[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유창혁-야마다 기미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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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욕심과 망설임이 가져온 패배

총보 (1~186)〓창 밖으로 열린 경포 앞바다는 티끌없이 푸르렀다.

백30의 방향 착오를 보며 때이르게 31의 대세점을 점거할 때 흑의 야마다는 순풍을 받으며 질주하는 뱃전에 서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47로 좌변의 대가가 완성됐을 때는 "이 판은 이겼다" 고 속으로 부르짖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풍은 사람을 약하게 하고 역류는 사람을 강하게 한다.

정신이 번쩍 든 劉9단은 56의 비범한 한 수로 추격에 나서는데 부자가 된 야마다8단은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

해적처럼 겁없이 다가서는 劉9단의 칼날에 마음이 약해져 끝내 69의 후수를 잡았고 그 순간 70을 당해 바둑은 드디어 어울리게 된다.

대국심리란 참 미묘하다.

아침에 텅 빈 바둑판을 바라볼 때는 그리 욕심도 없고 걱정도 없다.

지켜야 할 내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집이 지어지고 접전이 벌어지면서 내것들이 생겨난다.

그게 문제다.

92때가 이 판의 기로였다.

가장 큰 곳은 '참고도' 흑1과 백2. 그 어느 쪽이든 흑이 하나를 취하면 백은 나머지를 갖게 된다.

중앙 백을 추궁하려면 그 다음이 순서였다.

실전에서 야마다는 망설임과 초조 속에서 두 곳을 다 놓쳤고 그것이 결국 패인이 됐다.

집을 귀하게 여기면서 정작 큰 곳을 두지 못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가.

劉9단은 백을 쥐고 첫 판을 이겼으니 도전기의 급소를 장악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186수 끝, 백 불계승.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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