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1인당 50억 지원’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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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CH(포스텍)이 노벨상과 필즈상을 탄 해외 석학 한 명당 3년간 무려 40억원씩의 정착비용을 지원키로 한 것은 국내에서 진행돼온 석학유치사업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국내 대학들이 해외 유명 학자들을 대규모로 초빙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였다. 이 사업을 주도한 사람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다. 그는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시절이던 2008년 “한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내려면 해외 석학을 대거 초빙해 국제 사회에서 우리 대학들의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차관이 된 2009년 ‘세계 수준 연구중심대학(WCU: World Class University)’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년간 8310억원을 투입, 노벨상을 탔거나 그에 해당될 정도의 석학 338명을 유치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세계 2000여 명의 주요 과학자에게 추천받은 뒤 일부를 추려 다시 관련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는 노벨과학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초청 대상 석학들 대부분이 노벨과학상 수상자 선정과정에 관여하기 때문에 이들을 초빙하면 국내 대학과 학자들에 대한 인지도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특히 이들 석학의 거주비용 마련이 어려웠다. 애초에 사업 예산이 연구·개발비 항목으로만 규정돼 있어 제대로 된 주거 환경을 만들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12일 교과부가 발표한 지난해 WCU사업 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빙된 석학 288명의 평균 체류 기간은 채 4개월이 못 됐다. 홍국선(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WCU협의회장은 “외국인 교수를 데려와서는 전셋값도 안 주는 등 고생만 시킨 탓에 고작 몇 개월만 체류하다 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렇게 되면 국제사회 인지도도 나빠지고 석학의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받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POSTECH은 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해외 석학의 제대로 된 주거환경 마련에 중점을 뒀다. 주거환경만 잘 갖춰 주면 해외 석학들을 3년 이상 체류해야 하는 전임교수로 초빙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POSTECH 이재성 교학부총장은 “지난해부터 이 사업을 구상할 때 가장 공들인 부분이 정착비용”이라며 “석학들은 대체로 연구 그룹 3~10명을 이끌고 오기 때문에 연구비와 실험실 구축 비용까지 감안하면 40억원도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유치원부터 초·중·고가 갖춰진 외국인 학교를 학교 인근에 설립해 해외 석학들의 큰 고민 중 하나인 자녀교육 문제도 해결하기로 했다. 이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전 캠퍼스에서 영어 공용화도 실시한다.


POSTECH 백성기 총장은 “해외 석학이 ‘원포인트 레슨’을 하면 국내 연구 풍토도 많이 달라지고 해외 석학이 속한 인적 네트워크에도 낄 수 있게 돼 국제 인지도가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원진 기자

◆필즈상=국제수학자회의가 주관하는 수학 관련 최고 권위의 상.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36년 첫 시상이 이뤄졌고 4년에 한 번씩 주어진다. 자금을 토론토대의 수학과 교수인 JC 필즈가 기부해 필즈상으로 이름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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