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스탈린 50년 만에 부활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시는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을 앞두고, 시내 곳곳에 스탈린 초상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를 내거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승전 65주년 축하행사의 일환으로 4월 중순부터 모스크바 시내 10곳 이상에 설치될 플래카드에는 독일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탈린의 공적을 설명하는 문구도 포함된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스탈린의 초상 사진이 공식행사에서 50여 년 만에 재등장하게 된다. 스탈린은 1953년 사후 후계자인 니키타 흐루쇼프에 의해 격하됐으며, 소련권 내 모든 나라에서 그와 관련한 동상과 기념물들이 사라졌다.

모스크바 시당국은 “2차대전에 참전한 퇴역군인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강대국 소련’을 그리워하는 복고주의가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스탈린의 복권(復權) 움직임에 대해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등 인권·사회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대숙청 등 스탈린 시대의 공포정치를 정당화하고, 민주화를 후퇴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의 알렉세이 대표는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은 스탈린이 아니라 전장에서 피 흘린 병사들과 장교들”이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스탈린 사진이 재등장하는 것을 막겠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도 "많은 사람을 곤혹케하는 조치”라고 우려를 표명했고, 보리스 그리즐로프 하원의장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인권단체들은 26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모스크바 시당국의 계획을 중지해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그러나 러시아 인권단체들이 스탈린의 부활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상의 러시아 실권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스탈린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총리는 지난해 말 TV연설에서 “스탈린에 대한 일면적인 평가는 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재, 대숙청 등 스탈린의 부정적인 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공업화와 전쟁 승리를 이끈 스탈린의 지도력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차대전 승전에서 소련의 역할을 찬양하는 역사인식의 수정작업도 정권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