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년 동안 얼굴 없는 뒷바라지 ‘키다리 아저씨’들과 특별한 졸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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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동휠체어를 타고 졸업식장에 들어서는 정은숙(23)씨의 눈길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모처럼 멋을 낸 립스틱이 은숙씨의 긴장된 미소와 함께 반짝거렸다. 지난 19일 경기도 이천에 있는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한 은숙씨에게 졸업식장은 8명의 ‘키다리 아저씨’를 처음 만나는 곳이었다. 휴대전화 문자로만 안부를 주고받던 ‘아저씨’들이 꽃다발을 들고 한 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19일 경기도 이천시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정은숙씨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후원자들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 위 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병건(보성중 교사), 송병렬(영남대 교수), 김영두(엘라스캠 대표), 이명학(성균관대 교수), 안동규(군포고 교장),윤지훈(성균관대 강사), 장호성(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김병철(군포고 교사), 정은숙, 강민구(경북대 교수)씨. [조용철 기자]

은숙씨는 아홉 살 때 사고로 목을 다쳐 어깨 밑으로 왼손의 엄지·검지·중지 세 손가락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가정 불화 때문에 어려서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은숙씨는 경기도 광주의 장애인재활센터에서 생활하면서 세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세 손가락으로 파스텔을 잡고 한 줄 한 줄 색을 입혀 가며 꽃과 사람을 그렸다. 그림 실력이 쌓이면서 2007년 청강문화산업대학 애니메이션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연간 700만원이 드는 학비가 문제였다. 2007년 겨울, 재활원에 봉사 활동을 나온 성균관대 이명학(55) 교수를 만나면서 은숙씨의 인생이 달라졌다. 이 교수를 통해 은숙씨 소식을 들은 동료 교수와 친구들이 ‘얼굴 없는’ 후원자로 나섰다.

<중앙일보 2009년 7월 18일자 11면>

“영남대 송병렬 교수님이셔. 너를 보려고 아침부터 대구에서 올라오셨어.” 이 교수가 은숙씨의 휠체어를 둘러싸고 둥글게 선 선생님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은숙씨는 가벼운 목례로 첫인사를 했다. 송 교수는 허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춰 오른쪽 팔 밑에 꽃다발을 끼워 줬다. 은숙씨의 3학년 학비를 전액 지원한 김영두(42·엘라스캠 대표)씨는 “문자로만 만나다 실제로 보니 훨씬 미인”이라며 어색하게 말문을 열었다.

성균관대 80학번인 안동규(50·군포고 교장)씨는 “학회에 나갔더니, 이명학 선배가 후원 종이를 내밀었어요. 여러 사람이 매월 일정 금액씩 내겠다고 사인을 했더라고요. 이 선배가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니까 모두 믿고 사인을 한 거죠.” 성균관대 74학번인 이명학 교수부터 97학번인 윤지훈(33) 강사까지 모두 17명이 매달 일정 금액을 은숙씨에게 보냈다.

81학번인 김병건(47) 보성중 교사는 “가족들과 은숙씨를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러지 못했다”며 “이 선배한테 은숙씨의 대학 생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항상 응원했다”고 했다.

은숙씨는 명절이 되면 후원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편지에 직접 그림을 그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웬만해선 답장을 안 하는데 은숙이가 보내면 꼭 답장을 보냈다”고 말했다. 안동규 교장은 “문자를 자주 못 보내 미안하다”고 밝혔다.


졸업식이 끝나고 둘러앉은 자리에서 선생님들은 은숙씨에게 그동안 못 했던 질문을 쏟아 냈다. ‘애니메이션학과에선 어떤 공부를 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술은 잘 마시는지’ 등 회포를 푸느라 한 시간이 짧았다.

정씨가 그린 최근 그림. 전보다 한층 밝아졌다.

유일한 30대 총각인 윤지훈 성균관대 강사가 졸업 선물로 손목시계를 그의 왼팔에 둘러 줬다. 이 교수는 “처음 만났을 때는 그림이 어두웠는데 요즘 그리는 건 색도 곱고 그림체도 부드러워진 것 같다”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듯, 차근차근 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기운을 북돋웠다. 은숙씨도 “근엄할 것 같은 선생님들이 말도 많고 유머러스하다며 이제 전화도 먼저 걸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은숙씨는 취재기자에게 “말 주변이 없어 감사하다는 표현을 잘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기대를 많이 해 주셨는데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죄송했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서울 신대방동의 오피스텔에서 재활원 친구 2명과 ‘자립 생활’을 연습하고 있다. 프리랜서 삽화작가가 되고 싶어 다양한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선생님들은 그가 자립할 때까지 계속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에 인터뷰할 때는 사진 찍는 것이 두려웠어요. 제 얼굴이 알려지는 게 싫어 찍지 않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신경 쓰이지 않네요.”

그는 3년 동안 여러 난관에 부딪치고 또 극복하면서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관대해졌다. 그의 따뜻한 그림처럼 은숙씨도 변했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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