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지적 말발이 안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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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감사원은 전북도의 인허가 업무 담당 공무원 4명이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건축업자에게 도립사격장 신축공사를 허가한 사실을 적발하고 해당자 전원을 징계하라고 도에 요구했다. 하지만 전북도는 이들의 잘못을 불문에 부쳐 버렸다.

올 상반기 중 자산관리공사와 국방부는 각각 공적자금 특감과 고등훈련기 특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청구 사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급증하고 있다.

감사원의 지적이 피감기관들에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감사원의 영(令)이 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적사항 중 강제성이 없는 권고.통보는 아예 무시되기 일쑤고, 법에 정해진 이행 시한에 따라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변상판정(3개월).시정요구(2개월).징계문책(1개월)도 시한을 넘기는 경우가 숱하다.

◆실태=감사원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2004년 6월 말까지 감사원이 내린 65건의 변상 판정 중 피감기관이 시한이 지났는데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건수가 28건(43%)이나 된다. 같은 기간 감사원이 징계를 요구한 공무원 2059명 중 시한을 넘겼지만 징계받지 않은 사람이 212명(10.3%)이다.

시정요구의 경우 시한경과 후 미이행 건수의 비율이 6.5%(402건)에 달한다. 특히 힘있는 기관일수록 감사원의 요구를 무시한다. 2001년 1월 이후 감사원의 변상판정 및 시정요구를 받은 정부 부처 및 기관들의 시한 내 이행률을 살펴보니 행자부.경찰청 등은 20% 미만이었다.

권고나 통보의 경우 피감기관들의 이행률은 더욱 낮다. 예컨대 2002년 1월 감사원은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감사에서 고속철의 2등 객실 설계를 회전식으로 바꾸라고 통보했지만 공단 측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왜 불복하나=우선 감사 지적사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규정이 없다. 최근 감사 방향이 종전의 비리적발에서 정책평가 위주로 바뀌고 있는 것도 감사결과 불복의 주요 원인이다. 정책감사의 경우 관점에 따라 잘잘못이 갈리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발표된 '고등훈련기 특감'이 대표적인 예다. 주요 쟁점이었던 외국계 합작사에 대한 사례비 지급 문제를 놓고 감사원은 '세금탈루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며 맞선다.

감사원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다. 2001년 이후 감사원이 검찰에 고발한 비리혐의 공직자 132명 가운데 37%(49명)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감사원이 무리한 감사를 했다는 뜻이다.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은 "금융 전문가가 아닌 감사원 직원이 고도의 금융지식을 요하는 '부실채권판매' 분야를 감사하다 보니 공적자금 특감에서 시장의 상식을 무시한 부실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고 불평했다.

◆대책은 뭔가=이규선 변호사는 "감사 결과에 대한 불복은 국기문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이행을 강제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피감기관이 감사 지적사항의 이행계획을 감사원에 반드시 제출하도록 감사원법을 손질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처럼 감사원에 불복하는 기관에 대해 국회에서 예산 배정 때 불이익을 주는 방안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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