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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와이드] 정감 넘치는 삼랑진 5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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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릴적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가기만 해도 마음이 풍선같이 부풀어 오르던 5일장. 옛날처럼 붐비지는 않지만 아직도 엿장수들의 품바춤과 대장장이의 망치소리가 살아있다.장터를 수십년 동안 지키고 있는 할머니 상인들의 걸쭉한 입담도 정겹다.

도시의 대형 백화점들은 경제난으로 문을 열고 닫지만 시골 5일장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제자리를 지킨다.요즘 전국에서는 5백여곳의 크고 작은 5일장이 열린다.경남 밀양 5일장을 찾아봤다.

지난 9일 오전 10시.5일장이 선 경남 밀양시 삼랑진 농협 앞 장터.

‘삐-익’하는 호르라기 소리와 함께 ‘뻥’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하얀 연기 속으로 ‘뻥튀기’기계와 시골 아낙 서너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머니들은 펑튀기 아저씨가 맛봬기로 건네준 튀긴 쌀과 콩을 씹으며 수다를 떤다.

“대구 사는 큰 아들이 부장으로 진급해서 월급이 40만원이나 올랐다고 용돈을 30만원 보내왔다 아이가.” “세째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지러.딸이 둘이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장터를 기웃거리던 초등학생들도 입에 튀긴 쌀을 물고 귀를 막은 채 뻥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불을 살피던 50대 주인은 “요즘은 하루 20되(한되 삯 3천원)밖에 못하지만 설을 앞둔 다음 장부터는 50되는 튀길 수 있을깁니더”라고 희망을 내비췄다.

바로 옆자리에서는 민물고기 노점상 6명이 손님을 부르고 있다.

“아저씨,오늘 비도 오고 해서 싸게 주는긴데 붕어 몇마리 푹 삶어 잡숴 봐.술병 걸린데는 최고다 아이가.”吳정희(69)할머니가 호객행위(?)를 하는 동안 잉어횟감을 만드는 朴춘자(66)할머니의 손놀림이 재빠르다. 디스토마 염려에 대한 할머니들의 걸쭉한 항변도 재미있다.

“암걸려 죽는 사람은 많지만 디스토마 걸려 죽는 사람은 못 봤다.날보면 알잖아.40여년 동안 잉어회 먹었지만 까딱없다 아이가.”

“디스토마 약 한알이면 끝장 나.한알 먹으면 8년은 무사하다구.평생에 세알만 묵으면 될 걸 갖구 쓸데없는 걱정하구 자빠졌네.”

이들 할머니들은 삼랑진 5일장의 터줏대감이다. 吳 ·朴할머니는 낙동강변 마을인 밀양시 삼랑진읍 금세리로 시집 와 20세 때부터 나란히 민물고기를 잡아서 파는 일을 시작했다.지금도 집 앞 낙동강에 그물을 쳐 잉어 ·붕어 를 잡아 장에 온다.

“남편이 잡은 붕어 ·잉어를 광주리에 이고 50리 길을 걸어와 팔았제. 지금 영감은 저세상 사람이 됐지만 밭일 하는 것 보다 훨씬 수입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지.”

요즘 두 할머니가 하루에 파는 고기는 3백㎏ 정도.많이 팔 때는 8백㎏을 판매한다.시세가 ㎏당 5천원이니 장날마다 1백50만원의 매출을 거뜬히 올리는 셈이다.

김해시 생림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와 붕어와 잉어를 2만원어치 산 조주열(64)金영애(63)씨 부부는 “당뇨병에 효과가 있어 자주 사러 옵니더”라고 말했다.

曺씨는 붕어를 도라지와 함께 푹 고운 국물을 1년쯤 먹고 당뇨증세가 거의 사라졌다며 붕어예찬이 대단했다.

삼랑진읍은 경부선·경전선 철도와 낙동강 뱃길이 맞닿은 곳. 교통이 좋아 조선시대 말부터 5일장이 섰다.

바닷고기가 귀한 시절이어서 낙동강의 싱싱한 민물고기가 많이 나왔고 구포에서는 쌀 ·소금 등이 나룻배로 올라왔다. 생필품은 부산 ·대구 등에서 열차를 타고 온 상인들이 공급했다.

10여년 전부터는 뱃길이 끊긴데다 삼랑진역에 도착하는 열차편마저 줄어들어 장세가 많이 약화됐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3년전 삼랑진 읍내에 크고 작은 3개의 할인점들이 생겼지만 5일장의 손님은 줄지 않고 있다.상인 수는 1백여 명.손님은 1천여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장터 한가운데서 30여년 동안 곡식을 팔고 있는 金옥자(68)할머니는 단골이 1백여명이나 된다. 쌀 ·메밀 ·콩 ·보리 ·율무 등이 담겨 있는 20여개의 플라스틱 그릇 한가운데 앉아있는 金할머니는 “멀리 김해 ·밀양 청도면 등에서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장날이 기다려 진데이”고 말했다.

쌀 5되를 산 40대 주부는 “마트에서 사먹는 쌀보다 훨씬 맛있고 양도 좋기 때문에 꼭 할머니한테 쌀을 삽니더”라고 말했다.

이 곳에는 농기구 ·신발 ·옷 ·바닷고기 ·과일 ·나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삼랑진읍 일대 50여 개 자연마을 2만 여명의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5일장의 상인들은 수십년 동안 장사를 해 온 터줏대감과 뜨내기 상인들로 크게 나뉜다.

터줏대감들은 모두 한두평의 터를 갖고 있으며 장꾼임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뜨내기 상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꺼려한다. 뜨내기 상인들은 대부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장꾼으로 변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경제난 이전 삼랑진장에 뜨내기 상인들이 10여명 밖에 안됐으나 요즈음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화물트럭에 옥수수빵을 싣고 다니며 팔고 있는 40대 남자는 “부산에서 신발공장 협력업체를 운영하다 2년전 부도를 만나 가족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시골장터를 돌고 있다”며 “도시 상설시장을 가는 것보다 시골 5일장이 정감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삼랑진=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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