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서울교육청 ‘장학사 시험 비리’ 윗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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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8일 서울 압구정동 A고등학교. 교무실에 들어서자 한 교사가 “하루 종일 사람들이 들락거려 정신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쏘아붙였다. 이날 오전 이 학교 교장 김모(60)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검찰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이 학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B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신입생 등록 마지막 날이라 외부 손님의 출입이 잦았지만 교사들은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이 학교 교장 장모(59)씨도 17일 검찰에 체포됐다.

서울서부지검이 장학사 시험과 관련해 돈을 주고받은 혐의로 잇따라 체포한 장씨와 김씨는 모두 ‘교장의 꽃’이라는 강남 지역 교장이었다. 두 사람은 2007~2009년 서울시교육청 인사 담당 부서에서 함께 근무했다. 검찰은 장씨가 자신의 부하직원인 장학사 임모씨를 시켜 상사인 김씨에게 2000만원을 상납했다고 밝혔다. 임씨는 하이힐 폭행 사건으로 조사를 받다 장학사 시험 응시자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폭로되면서 지난달 11일 구속됐다. <중앙일보 1월 22일자 16면>

장씨는 검찰에 체포된 다음 날인 18일 구속됐다. 검찰은 장씨가 2개의 차명계좌 통장을 운용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장씨는 2007년과 지난해 부하직원과 지인 등의 명의로 된 통장을 개설했다. 이 차명계좌에는 1억여원의 돈이 입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장씨가 비자금을 조성해 윗선에 전달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19일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 역시 지난해 14억여원이 든 통장 사건으로 “2008년 교육감 선거 때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구설수에 올랐었다. 김씨는 공정택 전 교육감의 측근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지역 교장직 차지한 배경은=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장이라고 다 같은 교장이 아니다. 경기고 등 전통 명문고와 강남 소재 고교의 교장은 ‘대(大)교장’으로 불린다”고 했다. 그는 “보통 교장 임기가 2~3년인데 대교장 자리는 유독 짧은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인사 청탁을 통해 기존 교장을 밀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교장은 평교사 출신 교장은 꿈도 못 꾼다”며 “교육청의 일부 장학관이 로비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장씨는 상사인 김씨에게 2000만원을 상납할 즈음인 지난해 9월 B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돈을 받은 김씨는 지난해 자신의 사무실 책상서랍에 14억원이 든 통장을 보관하다 국무총리실 암행감찰팀에 적발돼 경질됐다. 하지만 그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에서 압구정동 A고로 갔다. 당시 일부에선 “금전적인 추문 때문에 물러난 사람이 강남의 고교 교장으로 임명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난이 일었다. 검찰이 윗선의 개입을 의심하는 이유다.

일선 학교에서도 교육 당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주요 보직을 매개로 한 교육계 지도층의 상납 고리가 구조화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A고의 한 교사는 “공직자 재산 신고를 누락한 김씨가 교장으로 부임하자 교사들이 민원을 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실수일 뿐이니 문제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정선언·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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