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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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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80년대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다. 당시 일본 공립학교에 다녔는데 ‘박소영’이라는 한국 이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나를 외국인이 아닌 평범한 제자이자 친구로 대해 줬다. 집에서 식구들과 모국어로 생활하는 것 외에는 일본어로 공부하고, 생각하다 보니 솔직히 민족이니 국적이니 하는 것은 잊고 지낸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내가 ‘한국인’임을 새삼 자각하는 순간은 한·일전이 열릴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배구와 야구는 일본의 국기와 같은 종목이었다. 특히 젊은 남자 배구선수들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스타였다. 국가대항 배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친구들은 ‘타도 미국’ ‘타도 한국’을 외치며 일본팀을 응원했다. 그럴 때마다 난 ‘스포츠에는 관심 없다’는 무심한 표정으로 일관하곤 했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배구 한·일전이 있는 날은 목욕재계까지는 아니지만 동생들과 TV 앞에 앉아 목이 터져라 한국을 응원했다. 이런 나의 기도가 통한 걸까. 스파이커 강만수, 세터 김호철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어김없이 일본 대표팀을 이겨줬다.

다음 날 학교에서 “한국이 이겨 좋겠다. 그 잘생긴 한국 선수는 누구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에게는 “어제 경기하는 줄도 몰랐다. 한국이 운이 좋았다”며 여유까지 부린 걸 보면 어린 나이지만 참으로 유치했다는 생각이 든다. 변명 같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의 경제사정이라는 게 일본과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TV를 통해 보는 조국의 현실은 최루탄과 시위로 얼룩져 있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전이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은 알아도 이웃나라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일본인이 더 많은 시절이었다. 내게 한·일전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이기 이전에 국가적 자부심을 건 중대 행사였다.

밴쿠버 겨울 올림픽이 한창인 요즘, 어릴 적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에서 활약하고 욘사마를 앞세운 한류붐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한국의 위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일본 언론들은 연일 “스포츠 강국이 된 한국에 배우자”며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보도하고 있다. 나가노(長野)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 금메달리스트인 시미즈 히로야스(<6E05>水宏保)는 19일 요미우리 신문에 “한국의 약진은 강인한 지도자들과 선수들의 투지가 일궈낸 성과”라고 분석했다. 이런 일본의 평가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일본이 못해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종목에 고루 선수들을 출전시킨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 최강의 스포츠 국가다. 엘리트 스포츠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스포츠 저변 확대에 성공한 일본에서 분명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그런데도 며칠 전 일본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들이 남자 500m 경기에서 은·동메달을 땄을 때 오사카(大阪) 등 일부 지역에서는 호외까지 발행하며 첫 메달을 자축하는 걸 보면서 솔직히 “우린 금메달 땄다”고 자랑하고 싶었다면 여전히 치기 어린 충동이었을까. 그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이국 땅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이 우리 선수들의 활약에 긍지와 용기를 얻고 있으니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대한민국 파이팅!”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