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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황하의 치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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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의 우(武)대사는 서울에 부임하자 방약무인한 언동으로 사람 놀라게 하더니 계속 그 방자함을 더해 왔다.

그의 외교관답지 않은 작태를 언론이 성토했음에도 그는 바뀌는 기색이 없다. 그러나 마치 한국에 총독이라도 돼 군림하는 양 무식하게 행동하는 武대사를 나는 좋아한다. 중국이 변방의 소국에 대해 품고 있는 속마음을 그가 알알이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 속마음 드러낸 武대사

비록 19세기부터 굴욕의 한 세기를 겪었으나, 오늘 다시 용틀임하며 일어나는 중국이 중화사상에 빠져 있는 것은 시대착오도, 과대망상도 아니다.

지난 3백년 세계의 패자(覇者)로서 군림한 서구와 최근 미국이 이룩한 과학과 기술의 힘을 중국이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1백년이 걸려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패권, 그 중에도 소중화 한국에 대한 종주권만은 포기할 수도, 양보할 수도 없는 것이 중국의 속마음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아무리 강성해지더라도 옛날의 속방상태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있다. 남과 북의 한겨레가 대민족화해의 장정(長征)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사정이 여기에 있다.

민족생존 전략의 기틀을 잡을 때는 바로 지금이다. 모든 것이 유동적인 현 상태야말로 큰 기회다.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는 세계의 경찰 노릇만은 사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계 도처에서 제국의 영광을 위해 싸웠던 영국인에 비해 오늘의 미국인은 정신적으로 허약하다.

밖에 나가 남의 일로 싸우다가 죽는 것은 절대 사절이라는 것이 미국인의 자세다. 푸틴 대통령이 강대한 러시아의 재건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경제력과 첨단기술에서 미국을 넘보는 일본은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참배 같은 시시한 일로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비교적 순항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인데 한반도를 힘으로 압박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이 현실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몇가지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화통일은 없다. 이것은 북한정권이 그 정통성과 존재 이유로 오랫동안 삼아왔기 때문에 하나의 타성이 돼 있을 뿐 그 시효는 끝났다.

둘째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아래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도 북한의 적화통일론과 평행을 이루는 타성의 표현일 뿐이다.

체제는 현실의 필요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이고, 남과 북에 두개의 나라가 불필요할 만큼 서로 비슷해지거나 보완적인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하나의 나라로 통합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수레를 말보다 앞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듣기에 피곤하다.

셋째, 아무 실익도 없고 상호주의원칙도 무시되는 상태에서 없는 돈 주고 귀한 쌀 퍼준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 동안 북한은 국제정치에서 주체성을 이룩했다. 남북이 손잡아야 이것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주한 미군의 감축이나 철수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희일비하는 한 한국은 그 경제력에 관계없이 허약한 나라다. 武대사가 함부로 방자하게 행동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가 만일 평양으로 전근되면 북한의 중국 의존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하던 작태를 결코 되풀이하지 못할 것이다.

*** 민족 화해로 '둑' 쌓아야

중국은 법가(法家)의 패도(覇道)를 실천해온 나라로서 힘있는 나라를 두려워하고 존경한다. 중국을 혼내준 통일베트남을 존경하고 핵폭탄 실험을 감행한 인도를 두려워한다.

그 대외정책은 극히 기회주의적이어서 원수의 원수라면 아무리 간악한 무리라도 손을 잡는다. 베트남에 적대적인 크메르루주의 자국민 대학살을 지원했던 이유다.

티베트에서 못된 짓을 하면서 중국을 아버지 나라로서 섬기는 한국인의 사대주의를 멸시한다. 황허(黃河)의 물이 넘쳐 한반도를 덮치기 전에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둑을 쌓아야 한다.

그 동안 미국과 일본을 배척하고 중국을 숭배하고 북한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을 폄하하면 진보적 민족주의자로 행세하던 이상한 풍조가 있었다.

이들이 또 다시 사상논쟁을 시작하는 모양인데 하품이 자꾸 나와서 민망하다.

武대사. 해가 바뀌었는데 또 망언 한 자락 하소. 모화(慕華)정박아들 정신 좀 나게.

김상기 <美 남일리노이대 교수>

▶필자약력 : 서울대.뉴욕주립대에서 철학 전공. 정치평론가. 재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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