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논산 훈련소장께 드리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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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논산 육군훈련소장님께.

누구인가 하시겠지요? 저는 입소하는 아들을 지켜보느라 지난주 목요일 연무대를 찾았던 수많은 부모·가족의 한 명입니다. 33년 만의 방문인데, 훈련소 참 번듯해졌더라고요. “아빠, 옛날 기억나?” 하는 아들 물음에 두리번대기만 한 게 저였습니다. 그날 좀 아쉬웠습니다. 악천후로 입영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부대장 인사, 부모에 대한 경례도 없이 이내 작별해야 했으니까요. 돌아오는 차에서도 녀석의 뒷모습만 연신 어른대더군요.

그 때문일까요? 바로 다음 날 아내와 함께 훈련소 홈페이지부터 들어가 봤습니다. “부모님, 믿고 맡겨 주십시요!” 하는 표시창부터 큼지막하게 뜹니다. 살펴보니 교육과정·병영생활이 요모조모 소개됐고, 옆에는 ‘보고 싶은 얼굴’도 있습니다. 뭔가 싶어 클릭하니 군복차림으로 찍은 소대별 기념사진이 쫙 펼쳐집니다. 이리 반갑고 든든할 수가…. 설날 아침에는 아들의 세배 전화까지 받았습니다. 훈련소에서 허락한, 전과 다른 배려가 아니겠습니까?

소장님. 저는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하는 백선엽 장군을 얼마 전 모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91세 노장군은 당신의 책 『군과 나』와 영문판 ‘From Pusan to Panmunjom’에 사인해준 뒤 “어느 나라에 이런 자원이 있습니까? 우리군은 학력이나 능력으로 세계 최강입니다.”라고 가슴 벅차하시더라고요. 1970년대 말 제가 근무했던 포병 대대에 대졸자는 1% 내외였으니, 이전은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좋습니다. 바로 그 대목입니다.

이런 자원을 관리하는 훈련소는 제식훈련·각개전투 훈련에 못지않은 또 다른 의무와 권한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즉 넓은 의미의 학교이어야 합니다. 자녀 한 둘을 소황제로 키우는 가정, 고식적인 지식 주입에 그치는 대학교 이상 가는 신개념의 늠름한 배움터입니다. 맨땅에서 몸을 굴리고 흙먼지를 뒤집어쓸 젊은이들은 그래야 강군(强軍)의 밑천이자, 사회성원으로 거듭납니다. 그 말을 전하려고 편지 드리지만, 이런 상식조차 한국적 마초이즘(남성 우위)으로 곡해하려는 엉뚱한 이들이 왕왕 없지 않습니다.

한 젊은 학자는 자기 책 『씩씩한 남자 만들기』에서 ‘씩씩한 남자’란 병영국가의 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한국은 맹종형 사회인데, 그건 “어쩔 수 없이 낭비하는 2년”인 군대에서 길러진다는 겁니다. 똑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전직 대통령 한 명도 했었지만, 턱없는 의구심을 깔끔하게 지워줄 책임이 사회와 군에게 있습니다. 제 의견에 공감을 하시는지요. 편지가 좀 딱딱했나요? 마침 맥아더 전기『아메리칸 시저』(윌리엄 맨처스터)가 기억납니다.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한 건 맥아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핑키 여사도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육사 앞 호텔에 장기 투숙한 뒤 4년 내내 아들을 지켜봅니다. 그런 관심과 독려 탓에 맥아더는 로버트 리(98.33점)을 제외하고 웨스트포인트 사상 최고 점수(98.14점)로 졸업하지요. 미국판 맹모삼천지교인데, 사실 부모 마음 어디나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훈련은 더욱 강하고 철저하게, 살필 대목은 더욱 깊고 섬세하게…. 이게 방법인 듯 싶습니다. 휘하에 수천·수만의 자녀를 둔 소장님, 내내 건승을 빕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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