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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웃음이 나는 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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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활짝 웃는 모습이 가장 자신 있다는 정경호. [변선구 기자]

요즘 tvN 코미디 프로그램 ‘롤러코스터’(이하 ‘롤코’)에서 ‘남녀탐구생활’ 못지 않게 인기를 끄는 코너가 있다. 인기 영화·드라마를 10분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10minutes’다. ‘아이리스’ ‘아바타’ 편이 폭소탄을 터뜨린 데 이어 설 연휴 땐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등 영화 4편을 합친 ‘10분 특집’이 배꼽을 쥐게 했다.

이 패러디물의 주연배우는 정경호(38). 화면 상단 초시계가 10분 경과를 일러주는 동안, 숨가쁘게 동분서주한다. 고문 당하고, 사랑에 빠지고, 총격전을 벌인다. 그러다 급박한 상황에서 말한다. “시간이 없어, 나중에 설명할게.” 실제 드라마 ‘아이리스’도 전후 관계 설명 없이 막을 내렸으니, 20부짜리 대작도 10분으로 충분하다는 풍자인 걸까.

“사실 10분은 짧죠. ‘15분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해요. ‘아바타’ 편은 20시간에 걸쳐 찍었는데, 10분에 편집하니 디테일을 놓치는 게 아쉽더라고요. 그리고 10분짜리 대본엔 연기의 앞뒤 설명이 없어요. 최대한 감정이입해서 풀어내야 하니 쉽지 않죠”

입담이 개그맨 못지 않다. 실제로가끔 코미디언으로 오해 받는다. ‘롤코’ 초창기부터 ‘불친절한 경호씨’ ‘막장극장’ ‘PPL극장’ 등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라서다. 원래는 연극·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 실감 연기는 정극 경험에서 나온다. ‘아이리스’ 편에서도 연인을 둔 채 죽어가는 장면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게 더 웃기니, 아이러니다.

“그게 제 코미디의 핵심입니다. 진지함으로써 웃기는 거죠. 의상·연출 등 상황은 패러디지만 연기는 패러디가 아니예요. 이병헌처럼 우는 장면에서 가짜로 울면 흔한 개그가 되지만, 진짜로 울면 실제와 차이 때문에 웃음이 나거든요. 아무리 황당한 상황에서라도 최대한 질퍽하게 연기한답니다.”

“극한 상황에서 전혀 나오지 않을 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내 코미디다. 말하자면, 정색 절제 코미디”라는 설명이다.

‘롤코’와 인연을 맺은 건 ‘막장극장’’10minutes’ 등을 계속 연출해온 김성덕 PD 덕분. 옴니버스 코미디를 제안하길래 “진지한 코미디를 허락하면 하겠다”고 했는데, 마침 뜻이 맞았다. 성우·음악·소품이 가벼움을 담당하고, 연기자들은 진지하게 하는 ‘롤코’ 특유의 코미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코믹 이미지가 고착될까 걱정될 법도 한데, 의외로 느긋했다.

“이미지 때문에 일을 피할 순 없죠. 그걸 깨나가는 게 연기자잖아요. 기타노 다케시(일본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처럼 저질 코미디를 하다가도 살벌한 연기를 하는 게 제 꿈입니다. 4월 개봉 영화(‘꿈은 이루어진다’)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겁니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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