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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도법스님이 존경받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난 여름 한더위에 털신을 신은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검은 고무신의 목부분을 감고 있던 인조털은 그나마 다 닳아 너덜거렸다. 밀짚모자에 낡은 바랑, 까무잡잡하고 마른 얼굴은 영락없는 시골 탁발승이었다.

"이런 스님이 서울 한가운데 조계사엔 왜 왔나" 궁금해 법명을 물었더니 '도법' 이란다.

"설마 1998년 총무원장 대행까지 지낸 그 도법 스님일까" 믿어지지 않아 거처하는 절을 다시 물었다. '지리산 실상사' 라는 답을 듣고서야 "아, 스님이군요" 라며 인사를 했다.

바로 그 도법(52)스님이 최근 불교 관계 기관.단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존경하는 스님' 4위에 올랐다.

1, 2, 3위의 면면을 보면 4위의 자리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위 성철 스님은 8년 전 열반한 고승. 2위 서옹 스님은 성철 스님보다 앞서 종정을 지내고 지금은 백양사 방장으로 물러나 있는 최고 원로. 3위는 통일신라시대의 원효대사다.

물론 1천년 전 고승과 생존해 있는 스님들을 나란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1, 2, 3위 모두 현역은 아니다.

반면 도법 스님은 한창 활동 중인 중진이다. 그가 수많은 현역 중진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계에서 기억하는 그의 행적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방에서 수행하던 그가 불교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90년 젊은 스님들의 수행단체인 '선우도량' 을 만들면서부터다. 선우도량은 불교계 내부 개혁을 주장했다.

94년 조계종의 개혁 당시 개혁회의 집행위원장으로 분규를 정리한 그는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자 조용히 물러났다.

그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불교계의 분쟁이 재발한 98년. 공석이 된 총무원장직을 대행하며 사태를 수습한 그는 미련 없이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지리산에선 귀농학교를 운영하면서 생태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그는 우담바라 사건을 두고 "세상을 기만하는 위선과 탐욕" 이라고 꾸짖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개혁과 실천, 그리고 깨끗한 진퇴로 요약된다. 그에 대한 불교 관계자들의 존경은 곧 개혁에 대한 열망인 셈이다.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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