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생기면 ‘애마’ 몰고 쌩쌩 빙판 밖서도 ‘모터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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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무명의 스케이터였던 모태범(21·한국체대)이 2010년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통해 ‘모터범’이라는 유쾌한 별명을 얻었다.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1000m에서 각각 금·은메달을 목에 건 그에게 딱 맞는 수식어라 할 수 있다. 사실 빙판 밖의 모태범도 ‘모터범’이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스피드광이다.

◆휴식 때도 질주 본능, 드라이브는 스트레스 해소법=2년 전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모태범은 아버지 모영열(51)씨에게 “차를 사달라”고 졸랐다. 안전을 염려한 부모는 ‘안 된다’고 막았지만 이번에는 아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부모는 손을 들었다. 생애 첫 차로 폴크스바겐 골프(사진)를 택한 모태범은 틈날 때마다 애마를 몰고 도로 위로 나섰다.

아버지 모씨는 “태범이는 국가대표 합숙훈련을 하는 터라 2주에 한 번꼴로 집에 온다. 그때마다 차를 끌고 어디론가 가더라. 운전을 잘하긴 하는데 혹시라도 젊음만 믿고 거칠게 차를 몰까 봐 걱정이 됐다. 드라이브가 거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인데 말릴 수도 없고…. 태범이 어머니와 누나가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하곤 했다”고 말했다. 모태범의 차에 대한 욕심은 끊임이 없다. 아버지 모씨는 “밴쿠버로 떠나기 전에도 ‘대회 잘 치르고 나서 차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부터 내라’고 답해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도 된다”며 웃었다.

◆중학교 때의 방황=경희중 3학년 시절 모태범은 20일간 훈련을 거른 적이 있다. 은석초등학교 4학년 때 스케이트를 신은 뒤 처음 있는 ‘무단결석’이었다. 그 기간 모태범은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몰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세 살 터울의 누나 은영(24)씨는 “어머니와 함께 태범이의 오토바이 열쇠를 숨기느라 힘들었다. 당시 어머니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훗날 모태범은 “스케이트를 그만뒀더라면 아마 폭주족이 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모태범의 마음을 다잡은 이는 전풍성(59) 감독이다. 당시 모태범·이상화 등을 개인지도하던 전 감독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빙상장으로 돌아온 모태범을 앉혀놓고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했다. “나는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스케이트를 포기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케이트를 신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느냐”고 훈계를 했다. 이어 “나도 네 나이 때는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다. 그런데 스케이트를 좀 더 배우면 오토바이와는 비교가 안 되게 재미가 있다”고 설득했고, 그 뒤부터 모태범은 훈련장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모태범은 오토바이에 흔들렸던 마음을 독한 훈련으로 다스리기 시작했고, 결국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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