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정몽구회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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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흑자내고 일자리 만들어내는 것이 최고의 경영이다.”

정몽구(鄭夢九)현대·기아차 회장의 경영관이다. 지난해 이른바 ‘왕자의 난’을 거쳐 분가(分家)에 이르기까지 곡절을 겪었던 鄭회장은 새해를 의욕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국내외 경기가 어렵다지만 올해 자동차 판매목표를 현대·기아차 합쳐 총 3백2만대로 작년보다 20% 늘려잡았다.일본에도 현대차를 팔 자신이 있다고 강조한다.

좀처럼 언론에 나서지 않는 鄭회장을 3일오전 양재동 새사옥에서 만났다.다소 투박해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그는 단순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답변으로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올해 경기는 어떻게 전망하나.

“자동차만 보면 지난해 내수로는 1백46만대가 팔렸는데,올해는 1백35만∼1백4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본다. 다양한 신차가 출시될 예정이어서 현대·기아차의 내수 전망은 어둡지 않다.

경제 위기라고들 하는데, 지나치게 위기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 경제에 대한 자신감과 스스로의 능력을 믿을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은 외환 위기도 가장 짧은 기간에 극복했지 않은가.”

-올해 사업계획의 주안점은.

“수출 확대다. 수출 대수도 늘리겠지만 부가 가치 높은 차량을 많이 수출

해 수익성을 높일 생각이다. 현지생산을 포함해 현대 1백19만대 이상, 기아 76만대 등 모두 1백95만대를 해외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미국 경기가 후퇴하고,세계적으로도 자동차시장에 공급이 넘친다는 지적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수출을 늘릴 호기로 생각한다. 레저용차량(RV)과 디젤 승용차를 미국·유럽에 처음으로 내놓는데, 현지에서 호평을 받을 것이다. 미국 시장이 지난해 1천7백50만대 판매에서 올해에는 1천6백50만대로 줄어들 전망이나 싼타페등 신차종도 나가고 그동안 국산차의 품질이 향상돼 승산이 있다. 유럽시장도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이나 채산성 모두 좋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부터 진출하는 일본 시장에서는 현대차가 팔리겠는가.

“일본은 제조업 세계경쟁력 1위로, 기술 수준도 높고 경쟁도 피열해 차를 팔아도 수익 남기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품질이 좋으면서도 일본 차에 비해 20% 가량 싸다. 올해 5천대 판매가 목표인데, 일본에서 1만대 가량만 팔면 현대·기아차의 이미지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빠른 시일내에 이 수준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국산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방안은.

“현대차는 그랜저XG와 싼타페 등 고급 차종을 본격 수출한다. 이를 계기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낙관한다. 과거에도 큰 어려움을 오히려 성장과 도약의 발판으로 바꾼 경험이 많다. 현재 대우차 문제 등 자동차 산업에 현안이 있지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것이다.”

-대우차 처리는 올해로 넘어온 주요 과제다. 해외 매각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정부에서 현대차에 위탁경영을 권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대우차는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협력업체중에는 현대·기아차에도 납품하는 회사도 많아 이들이 도산하면 현대·기아차에도 영향이 크다. 그런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대우차 문제가 잘 처리되기를 기대한다.”

-오는 4월 1일이면 현대차 그룹이 정식 출범한다. 그룹의 장기 비전은.

“현대·기아차가 현재 세계 7위 수준인데,2010년에 세계 5위의 경쟁력을 지닌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성장할 계획이다. 연구 개발 등 각 분야에서 경쟁력도 있고 소비자에게 좋은 차를 공급하는 회사를 만들려고 한다.”

-아직도 전경련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데.

“전경련 회장이 개인적으로 영광된 자리지만 나는 현대·기아차를 꾸려나가는 일만도 버겁다. 전경련에도 이런 의사를 밝혔다. 다른 유능한 분들이 맡아 잘 해나갈 것으로 믿는다.”

-투명경영과 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세계적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회사 경영 전반을 '세계적 기준' 즉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야하며, 그 핵심은 투명 경영이다. 우리 회사는 이사회 구성원 8명중 외국인이 2명이나 된다. 한국 기업 중에 이렇게 이사회에 외국인이 많은 기업은 별로 없다. 지난해 북미·유럽·동남아 기업설명회(IR)를 갖는 등 IR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도 투명경영을 해서 주주이익을 극대화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 건설은 鄭회장의 첫 직장이다. 지난해 정몽헌(鄭夢憲)회장과 경영권 갈등이 있었지만 최근 화해하고 현대건설을 지원했는데, 추가 지원 가능성이 있나.

“지원이 아니라 거래였다.계열 분리가 된 만큼 법(공정거래법)에 따라 원칙대로 할 것이다. 추가 요청이 있어도 지원할 수 없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연례행사처럼 벌어진 현대·기아차의 노사분규가 최근 거의 없어졌다. 노사관계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뭐니뭐니해도 노사가 신뢰하고 공동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가는 게 중요하다. 회사가 잘돼야 종업원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믿도록 노력했다. 종업원들의 요구는 왠만하면 다 들어줬다. 그러다보니 신뢰도 생기고 공감대도 형성돼 노사관계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이념은 무엇인가.

“흑자내는 경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일자리를 유지하고, 세금도 많이 낼 수 있지 않은가. 특히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 부문이 3이라면 원료·부품 등 관련산업의 비중이 7에 달할 정도로 고용 연관 효과가 크다.”

-현대·기아차중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차는 어떤 겁니까.

“곤란한 질문이다. 고장 안나는 차가 제일 좋은 차다. 현대·기아차의 모델이 모두 수준급이다.”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에게 신년인사는 했나.

“1일날 병원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안색이 조금 좋아지셨다.”

-좀처럼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지난해에는 사실 할 시간이 없었다.(웃으면서)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도 하지 않더라.”

정리=이용택 기자

대담=손병수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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