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 재연땐 가망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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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유럽의 은행들이 지주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는 데는 목적이 분명하다.

미국에선 은행이 주(州)간 경계를 넘어 영업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한 맥파든법이나 증권.보험업 진출을 막은 글래스 스티걸법을 피하기 위해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유럽에선 글로벌 경영을 위한 전략사령부의 필요성이나 투자은행 업무 진출을 위해 지주회사 형태를 취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의 지주회사 설립 시도는 무엇을 추구하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일본이나 한국의 은행들은 자회사를 통해 이미 증권이나 보험업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다각화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지동현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은행이 증권업이나 보험업에 진출했지만 실패한 것은 자회사를 모회사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통로로 이용했기 때문" 이라며 "이런 경영관행이 해소되지 않는한 지주회사란 형태로 자회사를 다시 묶어도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외피를 쓰느냐보다 경영 마인드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지주회사에 포함된 은행들을 2002년 6월까지 현 체제로 유지하기로 한 점도 그나마 나올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반감시키리란 지적이다.

은행.증권.보험 등으로 업종이 다른 경우에는 자회사로 독립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어차피 비슷한 업무를 하는 은행들은 하루빨리 기능별로 재편하는 게 은행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지주회사의 핵인 본부는 시티그룹에서 보듯 그룹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막강한 권한을 갖는데 정부 주도 지주회사에 낙하산 인사가 이뤄질 경우 초대형 부실 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고려대 박경서 교수(경영학)는 "지주회사의 경영진은 은행이나 증권.보험 등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된 시각으로 그룹을 총괄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며 "특히 정부 주도의 금융지주회사는 구조조정까지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는 금물" 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주회사가 제 기능을 하는데 걸림돌인 각종 규제도 빨리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세금을 자회사별로 따로 내지 않고 자회사별 이익과 손실을 합산해 납부하는 연결납세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은행 창구에서 보험상품이나 증권상품을 자유롭게 팔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여러 업종을 아우르는 지주회사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경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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