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내가 변해야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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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 전 택시를 타면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으로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하는 말이 "그 나쁜 ×들 있는 곳에 무슨 일로 가느냐" 고 하면서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정치인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나라경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정치인들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느라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개혁성공 모두가 원해

그래서 자기는 국회의사당 앞을 지날 때마다 분노를 느낀다고 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그 국회의원들 누가 뽑았습니까. 또 아저씨는 어떤 기준으로 투표하셨죠" 라고 물었더니 고향사람 찍었다고 한다.

"운전할 때 법대로 하느냐" 는 질문에 대해서도 "합승도 하고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을 때도 많다" 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정치권과 관료사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경제위기에 대한 전적인 책임도 이들에게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급기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의 리더십 부족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심기일전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경제가 잘못된 것이 정부만의 책임인가에 대해 냉정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30여년 동안 축적된 고도성장의 거품을 제거하는 경제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우리 경제 회생의 관건은 재벌.금융.노동.공공부문의 4대 개혁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면서 철저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왜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는가? 정부와 정치권이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정책을 운용하지 못하고 정치논리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기업과 근로자도 구조조정에 소극적이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경제가 강한 이유는 거품을 제거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은 경기가 나빠지면 고용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는 반면, 경기가 좋아지면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려준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바로 도태되고 인력은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옮겨간다.

모든 것이 시장논리에 따라 결정되고 개인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식정보사회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자신은 변화를 거부하고 남의 변화만을 바라고 있지 않았는가. 정부와 정치권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본인이 변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집단이기주의를 앞세워 저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위기의 때에 생존권을 둘러싼 불가피한 투쟁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기 전에 변화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구조조정의 고통과 아픔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경제위기감이 생겨난 데 대해 정부와 정치권만 매도해서는 근본적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 집단이기주의 자제를

우리 경제는 산업화.고도성장.제한경쟁체제에서 정보화.세계화.무한경쟁체제로 급속히 전환해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면 살아가는 방식 또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애직심(愛職心)을 키워나가야 한다.

애직심은 '자기의 직무를 사랑하고 직무능력을 개발해 경쟁력 있는 지식근로자로 거듭나는 자세' 를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애국심이나 애사심을 강조하면서도 애직심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사실 자기 직무에 충실하다 보면 남의 일에 간섭할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의 일을 쉽게 비판하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의 직무를 끊임없이 개선.개발.혁신하면서 개인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개인의 경쟁력이 모여서 조직의 경쟁력이 생기고 이것이 바로 국가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해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돌아가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마음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변화의 주역이 되도록 노력하자.

양병무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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