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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맑은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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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나는 이번 겨울방학을 이용해 김장훈씨에게서 도움을 받은 연구비로 새로운 독도 관련 자료 등을 상당수 수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중요한 고지도를 찾아도 상당히 고가여서 번번이 구입을 포기해 왔다. 어렵게 자금을 조달해 다시 구입하러 가면 중요한 고지도는 거의 팔려 나가고 남아 있지 않았다. 민간 애호가나 수집가들이 적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팔려 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국가기관에 구입자금을 신청한다고 해도 심사와 결재가 끝날 때까지 여러 달이 걸리기도 해서 이를 기다리는 동안 정작 필요한 고지도나 자료는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고 만다. 일본 내에서는 고지도가 경매로 팔려 나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2005년에는 독도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일본 오키 섬에서 발견된 독도 관련 중요 자료를 늑장 대응으로 놓쳐 버린 아픈 사례도 있었다. 국가기관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는 신중하게 심사하지 않은 결과로 혹시 국고를 잘못 썼다가는 나중에 국감에 걸려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울릉도 소재 독도박물관에는 원본 고지도 자료가 많이 소장돼 있는데 그것은 모두 초대 박물관장이었던 이종학 선생이 자신의 재산을 털어 모은 것들이다. 그러나 지식과 의욕은 있어도 재산이 없으면 자료 수집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에 대한 김장훈씨의 도움은 매우 뜻깊은 제안이었다. 이번 겨울방학에 모아 온 자료와 새로운 고지도 중에는 약 150~200년이 지난 일본의 공식 지도(원본)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자료와 고지도 중 일부가 올 3월 초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해 국회도서관에서 열리는 ‘독도·동해 고지도 전시회’에 출품된다.

그리고 이번 자료 수집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일본 국가기관 중 일부가 일본에 불리한 자료와 지도를 숨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 신문사 서울지국장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일본인이면서도 그는 “일본이 다케시마(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료를 숨긴다면 앞으로 한·일 관계에서 문제가 크다”며 조사를 약속해 줬다. 올해는 1910년 한일 강제합병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다. 이젠 한·일의 마음이 맑은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정립하는 데 매진해야 할 때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