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농촌으로 시집 간 한국인 자기 이름 딴 김치 브랜드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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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자신이 운영하는 한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매영씨.

일본 동북 지역의 야마가타(山形)현. 앵두·사과 등 과일과 농산물 생산량이 일본에서 가장 많은 농촌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한국에서 시집온 여성 2000여 명이 살고 있다. 야마가타현이 1980년대 말부터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벌인 결과였다. 야마가타에서 김치사업을 시작해 도쿄 등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한 김매영(일본명 아베 우메코·49)씨도 그렇게 일본에 정착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먼저 일본에 시집간 친구의 소개로 5살 연상의 남편과 서울에서 맞선을 보고 현지에 건너간 것은 90년. 서른 살 처녀가 혼자 바다 건너 시집을 간다 하니 주위에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모험심 강하고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그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시집 식구들은 마을의 한국인 신부 1호인 김씨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전업주부로 지내던 김씨가 김치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지자체가 실시한 요리경연대회였다. 야마가타산 포도주를 이용한 요리를 선보여야 하는 대회에서 김씨는 포도주에 재운 한국 갈비찜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 뒤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김치 강습을 시작했고, 96년엔 자신의 이름을 딴 ‘우메찬 김치’란 브랜드로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일본 열도를 강타한 한류와 한식 붐을 타고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한복차림으로 거래처를 찾아 억척스럽게 판로를 확보하고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개발한 덕에 지금은 도쿄의 유명 슈퍼체인 78개 점포에 납품할 정도로 회사 규모가 커졌다. 연 매출액은 약 1억엔(약 13억 원). 같은 마을에 시집온 한국인 며느리 등 25명이 함께 김치를 만든다. 야마가타에서 한식당을 열고 대형마트 푸드코트에 한식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엔 도쿄에 한식당 ‘야키니쿠 우메찬’을 열었다. 지역에서 한식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활동도 적극적이다. 지자체가 여는 한식 요리강좌를 10년째 맡고 있다. NHK 문화센터에서도 한국문화를 알리는 강의를 하고 있다. 도쿄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열리는 야마가타현 관련 마쓰리(축제)나 소개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해 김치와 전 등 한국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김치 홍보차 최근 도쿄를 찾은 그는 “한국 음식만큼 정성과 맛이 들어간 음식은 없다”며 “요리 강습 등에서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본 일본인들은 한국 음식에 푹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로 결혼 20년째를 맞는 김씨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아들과 고교에 진학하는 딸을 뒀다. 그는 김치사업의 공을 시부모와 남편에게 돌렸다.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편견 없이 사랑으로 맞이해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더 열심히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그는 야마가타현의 한일친선협회 이사로 선임됐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족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 다음엔 내 조국과 일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일 가정을 꾸린 그의 가장 큰 소망은 가장 가까운 나라 한국과 일본이 갈등 없이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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