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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언제 좋아질까…전문가 10인의 진단과 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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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다들 경제가 안좋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그 때가 언제쯤일까.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앞으로 2년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좀더 비관적인 사람들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학계.금융계.민간연구소의 경제전문가 10명으로부터 의견과 처방을 들었다.

"경기의 큰 흐름이 상승세로 돌아서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한다. 다만 올 상반기 중 일시적인 경기 저점이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 "

10명의 전문가 대부분은 현 경기가 대세 하강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하반기에 다소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더라도 그것은 하강국면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조조정이라는 숙제를 다하기 전에는 경기둔화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정부는 미국 경제. 국제 유가 등 해외 변수를 늘 염두에 두고 내수와 투자심리 회복을 위한 경제정책을 펴야 할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 경제, 언제 고개를 다시 들 것인가=경기가 언제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갈 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엇갈렸다.

다만 올 가을께엔 '이게 바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올 초부터 투입될 부실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효과가 6개월께 뒤에 나타난다고 전제할 때 지난해 하반기 성장률이 낮았던 데 따른 반작용으로 올 하반기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개선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수석연구원)

아직은 경기 저점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 정권 후반기에 나타나는 개혁 피로감이 심해지고 정부가 추진키로 한 정책만으로는 위축된 내수를 살리기 어렵다고 볼 때 경기 저점 얘기를 꺼내기엔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전무)

외환위기 이후 정상적인 경기사이클(2년 6개월 상승국면, 1년 6개월 하강국면)이 깨져 경기 저점을 전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KDI 김준일 연구위원,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연구위원)

또 구조조정이 6개월 내에 마무리 될 가능성이 작은 만큼 하반기에 일시적으로 경제가 나아지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해서 구조조정의 고삐가 늦춰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박원암 홍익대 교수는 지적했다.

◇ 부양책은 필요하다=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경기가 너무 급하게 식는 것을 막기 위해 부양책을 써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내수를 살려야 하는데 구조조정이 지연된다는 이유로 부양책을 쓰지 않기에는 최근의 경기 급락세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도 큰 변수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경기동향을 미리 읽고 거기에 맞는 금리정책을 펴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이 경기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점이다. (세종대 이종은 교수)

부양책으로는 물가 상승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저금리 정책 등을 통한 통화신용정책을 펴야 한다는 견해(서강대 조윤제 교수)가 제기됐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제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저금리 정책의 효과가 없고 하반기 기업부도가 늘 것으로 보여 실업대책 등에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재정지출의 강도는 예산을 상반기에 집중 배정하는 정도로는 안된다. 재정적자 폭을 1~2%포인트 정도 확대하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그는 만일 지금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하면 정부는 장기적인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가 회복돼야 공적자금 회수일정에 차질이 안생기고 올해 세수도 크게 줄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재정지출의 대상은 구조조정의 후유증을 치료하는 실업대책이나 사회간접자본(SOC)투자 등을 통한 건설경기 활성화쪽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 이것만은 꼭 풀자=보통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이 큰 것은 1999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경제위기가 확 폈다고 착각했던 데 따른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고통이 크더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이들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은 것은 역시 구조조정이다. 부실기업 상시퇴출 시스템을 만들고 정부의 시장개입의 강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또 외국인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상징적인 몇가지 일을 매듭지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대우자동차.현대투신 해외매각 등이 한 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이후 수출경쟁력을 높일 만한 새로운 산업정책도 만들 것을 이들은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여파로 나올 실업대책 방향을 바꿀 것도 권했다. 공공근로와 같이 일시적으로 돈을 주는 정도의 대책 대신 재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것만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투자자들에게 과거에 누렸던 고수익에 대한 향수를 하루빨리 잊고 수익률을 근거로 기업을 평가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정부의 정책 일관성 부재도 지적사항에서 빠지지 않았다. 경제가 곧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뒤진 공기업 개혁을 서두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이들은 주문했다.

송상훈.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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