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한국부모 미국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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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다 보면 문화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다양한 체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심지어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관심도 천차만별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마음은 다 똑같겠지만, 실제의 삶과 행동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전통과 문화, 생활 관습에 따라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도 다르다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미국의 부모는 재산의 유무와 관계없이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 생활을 체험하게 한다.

어려서는 신문을 돌리거나 옆집의 잔디를 깎아주는 등의 방법을 통해 용돈을 벌게 한다.

어려서부터 돈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노동을 통해 벌어야 하며 노동은 신성한 것임을 가르친다.

조금 더 성장하면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주유소 등에 가서 일을 한다. 미국에 살거나 여행을 하면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고등학생이 되면 동급생끼리 사업계획을 세워서 회사를 만든 후 물건을 생산.판매하는 과외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부모는 사랑과 정성을 자식의 교육에 다 쏟는다. 따라서 한국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대다수 한국의 부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절약하고 희생하면서 자녀의 교육에 열성을 쏟는다.

심지어 자녀의 과외비를 충당하기 위해 저녁에 단란주점에 가서 일을 하는 어머니가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다.

아이들의 모든 삶은 학교 성적에 집중돼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는 대학 입시와 연관돼 있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은 학교수업 외에 다양한 과외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의 부모에게는 자식의 학교 성적이 우수한 것이 최대의 자랑거리이고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보편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미국의 부모는 자녀가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독립해서 생활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실제로 많은 수의 대학생들은 스스로 생활비를 조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비까지 대출받아 졸업 후 취업을 해서 빚을 상환한다.

심지어 여름방학 때 알래스카에 가서 고기를 잡는 업종에 취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곳에는 임금이 높아서 몇달 일하면 충분히 일년치 학비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보통의 미국 부모는 자식이 독립해서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한국의 부모는 대학.대학원뿐 아니라 자녀가 결혼할 경우 결혼비용은 물론 아들의 경우 살 집까지 장만해 준다.

한국은 주거비용이 높은 나라인데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연령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셋집을 얻거나 집을 사주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

심지어 자식이 결혼한 후에도 매달 자식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대주는 부모도 볼 수 있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에 대해 무척 관대한 사랑을 베푼다.

한국인들도 많이 읽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라는 책에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라는 구절이 있다.

미국의 많은 부자 부모들은 자식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는 사회에 환원하는 쪽을 택했다.

자본주의 역사가 한국보다 좀 더 오래된 미국인들은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는 것이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세금 제도의 차이도 일부 작용하긴 했겠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가능한 한 많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심지어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가장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강구해서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돈과 재산을 물려주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자식이 풍요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의 경제 부흥에 이바지했던 많은 사업가들이 자신의 2세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최근 많이 보고 있다. 그게 부모의 사랑을 표현하는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웨인 첨리 <다임러크라이슬러 한국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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