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경신 '까치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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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제 오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리움이

새벽잠을 깨운다

너울거리는 어둠을 밀어 올리면

산은 가슴을 열어 안아들이고

그 아늑함에

온갖 시름을 잊는 이 시간

깍 깍 깍

갑자기 적막을 찢는 까치소리

한 컵의 새벽 약수처럼 짜릿하다

하도 요란스러워 한동안 지켜보니

이 가지 저 가지로 쫓고 쫓기다가

어느새 나란히 앉아 몸 비빈다

아마 사랑싸움이었나 보다

- 최경신(70) '까치소리' 중

누가 깨우지 않아도 새벽이면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있다. 그리움이거나 뉘우침 같은 것, 나이가 들어도 지나온 발자국에 고인 앙금들은 삭아들지 않는가.

그러나 이 아침은 무슨 반가운 기별이라도 물어다 줄 것 같은 까치소리에 잠 깨어 고것들의 사랑 짓거리를 보는 한 컵의 석간수를 마신다.

한 해가 저무는 이 까치설날,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시의 축복!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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