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 인사 청탁자 실명 공개 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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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외부 유력 인사에게 인사 청탁을 한 간부 16명의 이름을 회의석상에서 공개했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직접 회의실로 불러 청탁 과정과 배경을 해명토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들 모두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인사카드에 기록해 특별 관리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인사 불이익에 더해 공개 망신까지 준 것은 지나쳤다는 일부 지적도 있으나,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인사 청탁 문화를 돌아볼 때 과감하고도 필요한 조치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청탁 관행의 고리를 끊으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고 이번 충격요법이 공직사회에 일대 경종이 되길 기대한다.

사실 공직사회의 인사 청탁 비리는 뽑고 뽑아도 자라나는 독초(毒草)와 같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사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을 시키겠다”고 했겠나. 그럼에도 형 노건평씨를 비롯해 386들의 끼리끼리 자리 나눠먹기를 근절하지 못했다. 전 국세청장도 취임 일성으로 청탁 배격을 강조했지만, 본인이 로비에 연루됐다. 전 국무총리도 청탁을 받고 공기업 사장 자리를 알선한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만큼 우리 공직사회에 인사 청탁이 만연하고 끈덕지다는 방증이다.

이번 경찰인사를 앞두고 강희락 경찰청장은 청탁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었다. “청탁 전화가 수백 통이 걸려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실토하면서다. 그런데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독초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릇된 ‘네트워크 문화’ 때문이다. 바로 지연(地緣)과 학연(學緣)을 기반으로 한 연줄 문화다. 여기에 기댄 청탁은 기본적으로 능력과 성과를 무시한 채 음험한 뒷거래를 암시하며 공정한 순서를 ‘새치기’하는 것이다. 이는 공직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부도덕한 범죄다. 그럼에도 짐짓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정서가 배어 있는 것이다.

권력의 피라미드에 속한 공직의 속성과 인사권자 본인의 자세도 문제다. 시쳇말로 바람을 타기 쉬운 조직에 청탁이 횡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사권자가 공정성과 청렴성에 의심을 받을 때 청탁이 비집고 들어온다. 인사권자가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다면 전화가 수백 통씩이나 걸려오는 일조차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청탁이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부담은 없고 과실은 크기’ 때문일 터이다. 중간에서 청탁을 중개하는 쪽은 말씀 한마디 넣어주는 것으로 유형무형의 보답을 기대한다. 설사 잘 안 돼도 피해가 없다. 마찬가지로 청탁을 들어주는 쪽도 상응한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겠나. 그런 점에서 청탁하면 진짜로 ‘패가망신’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궁리해볼 만하다.

인사는 만사(萬事)다. 특히 공직 인사는 무슨 전리품이나 기득권이 아니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와 성과로 가늠할 일이다. 청탁은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는 부정행위다. 이는 과정의 불투명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공정한 인사는 투명한 관리와 절차가 생명이다. 이번 서울 경찰청장의 청탁자 공개가 한 차례의 ‘홍보성 쇼’로 그쳐선 안 된다. 청탁을 도려내는 서슬 퍼런 공직 기강의 칼날로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