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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형 프로그램이 뜨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원가가 너무 높잖아. 이래선 판매가격이 올라 판매량이 떨어 질 수 있어.”(김좌헌군서울 배명고 2)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파악해야돼. 가격보다는 디자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는 것을 생각해봐. 적당한 가격이야, 이대로 추진하자.”(임동건군서울 반포고 2)

회사의 상품기획 회의시간이 아니다. 한국은행 청소년 경제캠프의 ‘오늘의 벤처기업가’활동학습 현장이다. 지난 8~11일 한국은행 서울본부와 인천연수원에서 ‘청소년경제캠프’가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46명의 학생들이 산업체 견학·벤처기업 활동학습·주제 강연·경제토론 등 다양한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나도 사장’, 벤처기업 모의체험

8일 오후 2시 ‘오늘의 벤처기업가’ 활동학습이 한창이다. 각 조가 하나의 기업이 돼 제품의 기획·제작·판매까지 기업활동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장·총무·기획·영업·홍보 등 조원간의 역할분담도 명확하다. 각 조가 나눠지고 역할을 정한 뒤 책상 2~3개를 붙인 9개의 작업대를 만들었다. 이날 학생들에게 제공된 재료는 계란판알루미늄 호일천조각고무밴드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각 재료에는 200~1000원까지 제품원가가 책정됐다. 이런 흔한 재료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싶지만, 이내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그건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실제 수요를 생각해봐.”(김수현양제주여고 2) “재료의 특성을 충분히 살린다면 이런 재료들로도 기발한 제품이 가능할거야.”(노승후군용인외고 2) 계란판의 오톨도톨한 부분을 이용해 지압기를 만드는 조, 색깔실과 형광펜으로 색을 입혀 디자인을 강조하는 조, 빈 캔에 실을 묶어 모빌을 만드는 조 등 재료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상품들이 기획됐다. 상품의 종류가 정해지자 곧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고, 알루미늄 호일을 감는등 학생들의 손이 분주하다. 필통꽂이, 키높이 깔창, 얼음 제조기, 저금통, 유아용 모빌,지압·족욕기, 헬스기구 등 다양한 제품이 쏟아졌다. 곧이어 제품들이 진열되고 각 회사의 판매활동이 이어졌다.

“저희 회사가 만든 제품은 지압·족욕기입니다. 따뜻한 물을 담아 족욕을 하면 바닥의 계란판이 자연스럽게 지압을 해주는 건강제품이죠. 단돈 8000원이면 공부로 지친 몸의 피로를 싹 풀 수 있습니다.” 6조 사장인 김좌헌군이 만든 물건을 파느라 열심이다. 소비자는 자기 조원을 제외한 다른 조의 학생들이다. 제품을 판매하는 생산자가 되면서 동시에 상품을 평가하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이날 최고 인기상품은 6조의 지압·족욕기였다. 수험생의 소비심리를 잘 파악해 실용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활동학습을 담당했던 장경호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원가계산과 가격책정, 판매까지 이르는 체험학습으로 기업의 경영활동을 이해할 수 있다”며 “교과서의 어려운 경제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토론 앞두고 밤샘준비까지 하며 자료 조사

“작년과 같은 경제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위급한 경제위기상황에서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선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 시급합니다.” 김대현(서울 경기고 2)군은 FRB(미국연방준비은행)를 예로 들며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동현(분당 대진고 2)군이 반대의견을 냈다. “작년 금융위기 극복이 FRB덕분인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FRB의 지나친 독립성이 더 문제가 됐던 것 아닌가요?”

9일 오전 9시 ‘한국경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한 발표·토론 시간이다. 캠프참가 학생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오간다. 이날 학생들은 중소기업·중앙은행·내수시장·빈부격차·거시경제정책까지 총 5가지 주제에 대해 발표·토론을 진행했다. 캠프 참가 전부터 각자 준비해 조별 사전토론으로 의견을 모았다. 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 윤영식 차장은 “학생들이 밤샘준비까지 하며 방대한 자료를 조사한다”며 “매년 학생들의 수준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캠프참가 학생들도 “조별토론만큼은 긴장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과 토론하다 보면 자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을 참관한 뒤 경제캠프에 참가한 백인하(충남 예산고2)군은 경제학과로 대학진학 목표를 잡았다. 백군은 “교과서의 경제개념들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토론하고 경험하면서 경제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됐다”며 “인문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학문을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백군은 이런 자신의 고민과 성장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학업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목표를 향한 노력이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뚜렷해지니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더군요.

[사진설명]‘ 오늘의 벤처기업인’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계란판의 표면 특징을 살린 제품을 구상하고 있다. 이들은 계란판의 오톨토돌한 부분을 이용해 ‘자신감 6cm’라는 ‘키높이 깔창’을 선보였다.

<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 사진=김진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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