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년 비록 북핵 2차 위기] 4. 국제사회 북핵 대응 어떻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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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右)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2002년 10월 26일 미국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기자회견을 끝낸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했다. [AP=연합]

2002년 10월 21일 오전 평양 중구역 만수대의사당. 8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 19일 도착한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HEUP)을 둘러싸고였다. "핵문제는 북.미 간 문제입니다."(김), "나는 노동신문 보도와 똑같은 그런 얘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정), "거듭 말하지만 핵문제는 남한과 관계가 없습니다."(김), "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져 남한의 경제가 영향을 받습니다. 국민도 불안해 합니다. 어째서 남한이 핵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법적으로도 북한의 HEUP는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기로 돼 있는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입니다. 우리는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문제제기를 할 것입니다."(정)

정 장관은 계속 몰아붙였다."귀측은 북.일 정상 간 평양선언(2002. 9. 17)에 핵문제 해결 원칙을 담았습니다. 일본하고는 그렇게까지 해놓고, 우리하고는 대화도 못 한다는 것입니까."김위원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고 한다. 그러고선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안보상 우려(핵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당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타진했다. 그러나 북측은 "김위원장이 지방에 가 있어 김영남 위원장과 만날 수밖에 없다"고 알려왔다(북한 방송에 따르면 김정일은 10월 17, 21, 22일 지방에서 현지지도를 한다).

장관급 회담은 우리 측의 설득.압박과 북한의 반발로 점철됐다. 그래서 당초 3박4일로 잡혔던 일정은 하루를 더 넘겼고, 23일 오전 2시에야 공동보도문이 나왔다.

핵문제 합의조항은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핵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합의 내용은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북한의 해결 의지를 담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는 컸다. 북한이 남한과 처음으로 핵문제를 협의하고, 그 결과를 문서화하는 데 동의했다. 회담은 북핵 문제와 관련한 남북대화 채널의 유용성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계기도 된다.

◆북한, 미.중 정상회담 하루 전 첫 성명=장관급 회담 후 HEUP에 대한 북한과 국제사회의 입장은 명료해진다. 10월 25일 평양. 전 세계가 기다리던 북한의 첫 공식 입장이 나왔다. 외무성 담화였다. 북한이 3주 전 제임스 켈리 미 차관보에게 밝힌 내용과 흡사했다. 논점은 네가지였다. ①북핵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다 ②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있다 ③핵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 ④북.미 불가침 조약 체결이 핵문제 해결의 현실적 방도다.

담화는 HEUP 추진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그것을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북한이 이런 내용의 담화를 25일 낸 데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정부 관계자 A씨는 "북한은 북핵 해법의 틀을 짜는 관계국 간 정상회담이 26일부터 잇따르는 것을 저울질한 것 같다"고 말했다.

10월 26일 오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미국 텍사즈주 크로퍼드 목장.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부시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계속 협조키로 했습니다."(부시),"북핵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힙니다. 중국은 한반도가 비핵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련의 사태로 우리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오늘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키로 합의했습니다."(장)

이 회담은 두가지의 큰 의미가 있다. 하나는 북핵의 평화적 해결 원칙 합의다.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관해 처음으로 관련국 정상과 회담하고 내놓은 결과물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북핵 문제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다. 회담은 "북핵은 북.미 양자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관련국 간의 다자 문제"라는 미국의 주장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외교 소식통 B씨의 설명."중국의 2003년 3자(북.미.중) 및 6자(남북, 미.일.중.러)회담 개최 중재는 이 회담에서 출발했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은 이 회담을 통해 중국을 끌어들였다고 평가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장 주석을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하고, 손수 트럭을 운전하면서 광대한 목장(650ha)을 안내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지요(당시 이 목장에 초대받은 외국 정상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뿐이었다). 장 주석은 새 미.중 협력관계를 알리고, 또 은퇴 후의 입지도 고려한 것 같습니다(장 주석은 그해 11월 국가주석직을 후진타오(胡錦濤)에게 물려준다)." 이 회담은 미.중 관계가 전략적 경쟁관계가 아닌 전략적 협조관계임을 선언한 자리이기도 했다.

◆DJ 제네바 합의 신중 대응 당부=10월 27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멕시코 로스카보스. 김대중 대통령(DJ)은 부시 미국 대통령.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별도의 3국 정상회담을 열었다. 북핵 문제 해법의 틀을 짜는 회담이었다. DJ는 이날 여느 정상회담 때와 다른 모습을 보여 배석자들을 놀라게 한다. 발언 순서가 왔을 때 그냥 말하지 않고 준비해간 서류를 차근차근 읽어내려갔다. 정제된 외교적 수사를 구사하기로 정평이 난 그가 기조발언문을 읽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회담 관계자 C씨의 설명."DJ는 정상회담 하루 전 관계부처가 준비한 서류를 토씨까지 손질하더니, 회담에선 배석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준비해간 발언문을 읽었습니다. 엄중한 방법이었지요. 미.일 정상 앞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3국 정상의 발언 요지."우리는 북핵 문제에 강한 우려를 갖고 있으며, 평화적 해결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할 것입니다. 북한의 HEUP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네바 합의가 중대한 손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의깊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핵 문제가 한반도에 위기가 아닌 냉전 종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갑시다."(DJ),"미국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및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관련해선 미.중 간에도 공통의 이익이 있습니다."(부시), "일.북 국교 정상화 교섭에서는 납치 문제와 함께 핵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의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예정입니다. 이 교섭은 일.북 평양선언의 완전한 준수없이 타결되지 않을 것입니다."(고이즈미)

3국 정상의 발언을 뜯어보면 흥미롭다. DJ의 속내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로 정리된다. 부시는 "한반도 비핵화는 미.중 간의 공통이익"이란 얘기를 꺼내 북핵 문제에 중국을 끌어들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고이즈미 발언은 대북정책에서의 방향전환을 뜻한다."북핵 문제의 해결없이 북.일 국교 정상화 없다"는 얘기였다. 켈리 방북 이후 일본 총리관저와 외무성 내 대북 협상파들이 미.일 동맹파로부터 십자포화를 얻어맞은 것과 맞물려 있다.

3국 정상은 회담 후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요체는 세가지였다. ①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신속하고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해야 한다 ②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를 강조한다 ③3국 간 긴밀한 협의와 공조의 지속이 성공을 거두는 데 긴요하다. 이 회담은 북한의 HEUP 시인이 위기로 치닫는 것을 막는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강조되고, 미국도 북한 침략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APEC회의 때의 미.러, 한.중 정상회담 결과도 비슷했다. 북한의 HEUP 문제가 밖으로 불거진 지 열흘여 만에 국제사회의 대응 윤곽이 그려진 셈이다.

그러나 북한의 HEUP 문제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북한에 이 합의상 의무조항인 중유 공급을 계속할 리가 없었다."나쁜 행동에 보상을 해줄 순 없다"는 말이 미국 측에서 흘러나왔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핵 사찰을 명확히 하지 않고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한 제네바 합의를 클린턴 행정부의 최대 외교 실책으로 보고 있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물론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을 비롯한 온건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조치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위기로 치닫기 시작했다.

오영환 기자.정용수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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