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강국의 비결⑤ 스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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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탈로치와 루소를 낳은 나라 스위스는 다문화·다언어 교육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26일 종로 대사관저에서 토마스 쿠퍼(Thomas Kupfer) 스위스 대사의 부인 피오렐라 쿠퍼(Fiorella Kupfer)를 만났다.

다양성 존중하고 관심·격려로 개인차 줄여

“스위스에는 교육부 장관이 없어요. 각 주마다 교육시스템이 달라서죠. ‘의무교육이 7세부터 9년간’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같은 게 거의 없어요.” 하나의 통합된 정부 아래 각 주의 자치권을 최대한 인정하는 연방공화국이라는 특성 때문에 스위스엔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한다. 각 주는 4개의 공용 언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망슈어) 중 하나를 택해 교육하고, 초등학교 학제도 5~7년까지 다양하다. 스위스 교육은 다문화·다언어 등 다양성을 존중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외식 수업이 보편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초등학교 6년 과정 후에는 성적에 따라 상·중·하위권으로 학급을 나눈다. 각 교실에선 정교사와 보조교사 2명이 함께 수업한다. 수학시간을 예로 들면, ‘곱셈’의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정교사는 다양한 곱셈 문제가 빼곡한 학습지를 나눠준다. 학생들은 짝을 지어 교실, 복도 등에서 자유롭게 서로 문제를 내고 답을 맞히며 공부한다. 과제수행을 마치면 교실로 돌아가 교사에게 학습결과를 확인 받는다.

정교사가 내는 문제를 모두 맞히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보조교사에게 개인지도를 받으며 보충학습을 한다. 쿠퍼는 “우리는 모든 학생이 동시에 똑같은 학습목표를 달성한다고 믿지 않는다”며 “관심과 격려를 통해 개인차를 줄여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외국어 교육으로 글로벌 인재 키워

작은 나라에 공용어가 4개나 있으니 의사소통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법도 하지만 쿠퍼는 “문제없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학교육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란다. “살고 있는 칸톤(Canton·주)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각종 외국어로 된 표지판과 간판 등을 만날 수 있어요.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3~4세가 되면 유치원에서 ‘정통’ 독일어를 배워요. 가정에서 사용하는 ‘스위스 독일어’는 지방마다 달라 소통에 어려움이 있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영어를, 4학년 때부터는 프랑스어를 배워요. 외국어 교육은 인문학교를 가느냐, 직업학교를 가느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등학교 과정까지 계속된답니다.”

그는 한국의 영어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작년에 남편과 함께 지방의 한 명문고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스위스에 대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실력이 매우 뛰어나더군요. 그런데 발표 후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때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지 못하더라고요. 암기식 공부만 해서 그런 것 같았어요.” 스위스의 영어교육은 크로스워드 퍼즐·팝송·영어동화 등을 통해 이뤄진다.

문법 암기보다 말하기와 듣기 위주의 놀이식 수업으로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자극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가정에서는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쿠퍼는 “스위스 사람들은 3개 국어를 섞어가면서 대화할 때도 있다”며 “서툴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영어로 자주 대화하며 입 밖으로 내뱉어야 실력이 는다”고 조언했다.

호텔관광경영과 최첨단기술 분야 세계 선두

“스위스에는 글리옹, 로잔 같이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호텔관광경영학교들이 많아요. 제 조카도 우수한 성적으로 김나지움(고등학교)을 졸업해 호텔학교에 진학했죠. 한국 유학생들도 관광·호텔경영학을 공부하러 스위스로 많이 간다고 들었어요.” 스위스 학생들은 성적에 매달리기보다 다양한 직업 훈련을 통해 적성을 찾는다. 전문대학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세기에 창설된 스위스호텔경영대학은 특화된 호텔경영과정을 최초로 제공했을 뿐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서 호텔경영과 국제비즈니스를 현대적으로 연계해 발전시켰다.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은 이곳에서 실무위주의 전문교육은 물론 체계적인 이론수업을 통해 호텔리어·요리사 등의 꿈을 키운다.

쿠퍼는 “스위스는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보이고 있는 나라”라고 자랑했다. 스위스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29명으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 에 이어 6번째로 많은 국가다. 인구 1인당 노벨상 수상자로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특허보유율도 세계 상위권이다.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자금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덕분이다. 그는 “스위스 대학은 국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비가 저렴하다”며 “첨단공학·호텔관광 등에 관심 있는 한국학생들이 이 기회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설명]“한 사람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는 것이 스위스 교육의 목표에요.” 다양성 존중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스위스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 준 쿠퍼 대사부인.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사진=김진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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