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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문충성 '뿌리에 관한 명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원래 없는 것이었다,이따금

불면으로 타오른다

불면으로 뜬눈으로 한밤 밝히고

대낮에도 강도처럼 나를 훔쳐

어디에도 없다

아득한 기억 더듬으며

시원의 빛 솟아나는 시간에서 공간 사이

떠돌지만 떠도는 것들이 어디

떠도는 것들 뿐이겠느냐

떠도는 것들은 떠돌다 스러지겠지만

스러진 그 자리에 뿌리는 혹여 뿌리 내려

새파란 바람 불게 하리

캄캄한 말이 있을 뿐

원래 없는 것이었다,어쩌다

-문충성(62)‘뿌리에 관한 명상’

떠도는 것들은 뿌리가 있다? 마음 하나 잡지 못 해서 몸 하나 붙여두지 못해서 천방지축 떠도는 우리네 사람들도 저 나무나 풀들처럼 뿌리가 있어서 정작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마음 가는대로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나를 가두지 못해 잠 못이루는 밤이 있고 밝은 대낮에도 나를 도둑 맞아 헛것이 되어 떠돌고 있다.

어디 바위 틈에라도 쉬일 곳 없이 떠돌다 스러지면 비로소 뿌리를 내리는 것인가.이 지친 걸음들은.

이근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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