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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 이 쓰레기 같은 세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신간에 나오는 우디 앨런(65)의 고백 한 구절.

"가장 돼 보고 싶은 인물은 소크라테스다.그가 위대한 사상가여서가 아니다. 나도 심오한 통찰력은 가졌음으로 굳이 사상가 소크라테스를 동경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에겐 죽음을 맞이 할 때 보여준 용기가 있다. 난 죽음에 의연하지 못하다.자동차 엔진의 소음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다. 소크라테스처럼 돼보려고 여러번 시도하려 몽상만 할 뿐이다."

이 한 구절의 서술에는 앨런 만의 거만함과 솔직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사실 그가 작품을 통해 보여준 태도 역시 항상 그랬다. 안경 쓴 창백한 얼굴에 잔뜩 쪼그라든 어깨를 가졌지만 광적으로 쏟아내는 열정과 거칠 것 없는 풍자는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한국인 입양아 순이와 결혼해 속없는 늙은이란 소릴 듣긴 하지만, 오히려 우디 앨런의 솔직함으로 평가받는다.코미디를 가장한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채플린 이래 처음이란 평가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의 산문집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쓰레기 같은 세상'(원제:Side Effect)에는 소설 ·에세이 ·희곡 등 17편의 글이 묶인 책으로 스크린에서 봤던 앨런의 진수를 문자로 만나는 즐거움을 준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그의 저서이기도 한 이 책은 화려한 고층 아파트와 홈리스의 지하도가 공존하는 현대사회를 신랄하게 비꼬며 냉소하는데 주력하면서 그의 철학적 깊이와 자유로운 글쓰기의 일단을 보여준다.즉 우디 앨런 다운 글이라는 상찬(賞讚)이란 말이다.

영화에서 고집스런 개성을 추구하며서도 흥행에도 성공했던 이유가 현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들로 관객들의 공감대를 끌어 낸 것이라면 이 글에선 현대인이 쏘아붙이고 싶었던 세상에 대한 비꼬기가 무기다.

여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보다 오히려 그 속에서 소란스럽게 살아가는 것으로 삶에 대한 에너지를 얻는 방법론까지 곁들여 완성도까지 높이려 한다.

그러나 잡문에 가까운 글들이라 앨런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보단 그의 지적 단면들을 확인시켜주는 글이라는 유보적인 판단을 곁들일 수 밖에 없어 유감이다.

패러디와 풍자로 유명한 그인 만큼 이 글에서도 예외는 아니나, 읽는 이의 눈에 쏙 들어오는 종류의 글은 아니다.뉴욕과 서울의 문화적 뉴앙스 차이, 번역어라는 번거로움 때문이다.우디 앨런 매니아라면 또 다르겠지만...

'돈을 갖고 튀어라' '애니홀' '마이티 아프로디테'등을 감독한 앨런은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브룩클린에서 태어났으며 앨런 스튜어트 고니스버그란 본명을 가진 유태인이다.

신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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