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호남 물갈이론’ 호남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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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의원들이 15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역 유권자들의 설 민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주선·김진표 최고위원, 전병헌 전략기획위원장. [연합뉴스]

‘호남 물갈이’는 민주당의 핵심 선거전략 중 하나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시민공천 배심원제’를 도입해 호남 공천을 개혁하겠다고 말해왔다. 당이 후보군을 정하면, 전문가 100명과 시민 100명의 배심원단이 후보를 낙점하는 방식이다. 이는 “호남 기득권 포기”를 역설해 온 정세균 대표의 승부수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일 복당한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국민경선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복당 다음 날부터 “나는 국민경선론자다”라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몇 백 명이 모여 앉아서 뽑는 거(시민공천 배심원제) 가지고는 파괴력이 없다”며 “물갈이도 아래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광주시장을 예로 든다면 광주시민의 손에 의해 물갈이가 이루어지도록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정세균 대표는 시민공천 배심원 제도를 “밀실공천의 취약점을 개선하고 동원 경선의 부작용도 개선하는 노력”(10일 당무위원회)이라고 선전해왔다. 주류 측은 이 제도를 “광주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도 적용해야 한다”(강기정 의원 등)고 밀어붙였고, 정 대표도 “가능성은 열려 있다”(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는 입장이었다. 당 주류 측은 광주시장 후보를 공천배심원제로 뽑으려 하는데, 정동영 의원은 국민경선으로 뽑자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현재 정 대표 주도의 호남 물갈이에 대한 당내 저항은 거세다. 광주시당위원장인 김동철 의원은 이달 초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수도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당선이 유력한 호남 지역에서 후보를 상대에게 양보한다는 주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광주시 의회는 4명의 당선자를 뽑던 기초의원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축소하는 조례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연대는 물 건너 가고 민주당의 호남 독식 가능성만 더욱 높아진다.

물갈이에 반대하는 호남 의원들과 정동영 의원계가 결합하면 당내 주류·비주류 갈등이 표면화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세균 대표와 주류 측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그러나 쉽게 호남 물갈이를 포기하진 않을 태세다. 정 대표 핵심 측근인 최재성 의원은 “이미 당 대표가 기초의원 후보 15%에 대한 전략공천권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선거연합을 위한 호남 기득권 포기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남 물갈이론’은 지금 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2000년) 시절부터의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물갈이 얘기가 나올 만큼 민주당에선 난제 중 난제였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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