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된 회사를 ‘적정하다’ 평가…회계사·변호사가 분식회계 공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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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닭고기 가공·유통 업체인 신명B&F는 한때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건실한 기업이었다. 2006년 코스닥에 우회 상장한 뒤 바이오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하지만 투자 실패가 거듭돼 자금난에 빠졌다. 그러자 이 회사의 대주주 이모(47)씨는 120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해 은행 채무를 갚거나 주식 대금을 냈다. 당시 신명B&F사의 자회사인 신명은 부실이 누적돼 자본이 완전 잠식된 ‘빈 껍데기’ 상태였다. 그러나 신명B&F는 280억원을 자회사인 신명에 빌려줬다.

이런 상황에서 H회계법인은 2008년 3월 신명B&F사에 대한 외부 감사 결과를 ‘적정’으로 평가했다. 한 달 뒤 다른 회계법인이 자회사 신명의 재무상태를 ‘의견거절’로 평가하자 이 회계법인도 신명B&F에 대한 평가를 ‘의견거절’로 바꿨다. 이에 따라 신명B&F가 상장 폐지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 한 달 뒤인 같은 해 5월 H회계법인은 신명B&F에 대해 다시 ‘한정 적정’으로 평가했다. 불과 두 달 만에 한 회사에 대한 평가가 두 번이나 달라진 것이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들어가면서 분식회계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금감원과 검찰에 따르면 대주주 이씨 등은 분식회계 경험이 있는 공인회계사 김모(37)씨와 법률자문을 맡을 변호사 김모(41)씨를 소개받았다. 회계사 김씨는 H회계법인의 이사였던 회계사 백모(44)씨를 찾아가 “상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신명B&F가 314억원의 당기순손실과 함께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것을 숨기기 위한 분식회계 작업에 착수했다.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회사에 채권을 양도하고 현금을 받은 것처럼 꾸몄다. 다 써버린 채권을 채무 변제에 사용한 것처럼 위장하거나 사채를 회사자금으로 속이는 등 갖은 수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백씨는 후배 회계사 3명과 전담팀까지 꾸려 분식회계 전 과정을 주도한 대가로 1억1000만원을 받았고, 회계사 김씨와 변호사 김씨는 각각 1000만원을 받았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손실을 숨긴 채 10개월간 버티던 신명B&F는 지난해 4월 결국 상장이 폐지됐다. 같은 기간 이 회사 주식 1569억원어치가 거래됐고 일반 투자자들은 수백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대주주 이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백씨 등 공인회계사·변호사, 채권자 등 11명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씨와 회계사 김씨는 다른 사건에도 연루돼 구속기소됐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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