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5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52. 실험용 쥐 사냥

많은 사람들이 쥐를 백해무익한 동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의 입장에선 쥐만큼 소중한 동물도 없다.

교배기간이 짧아 불과 몇 달 만에 새끼를 낳는데다 인간과 유전자가 90% 이상 일치해 원숭이 다음으로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학실험이 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수백만마리의 쥐가 의학연구용으로 희생된다.

쥐가 인간을 위해 겪는 고통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예컨대 쥐에서 혈액을 채취할 때 사람이면 혈관에 주사기를 꽂지만 쥐는 혈관을 찾기 쉽지 않아 불가피하게 안구의 혈관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쥐의 눈에 주사기를 찌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쥐에게 물리는 연구자도 비일비재하다.

실험용 쥐 가운데 누드마우스란 것이 있다. 1962년 발견된 돌연변이 쥐로 털이 없다. 누드마우스는 털 뿐 아니라 흉선(胸腺)도 없다.

흉선은 면역기능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T세포의 생산을 맡고 있다. 면역기능이 없기 때문에 곧 외부 세균에 감염돼 죽는다.

따라서 누드마우스는 항암제 치료를 받는 백혈병 환자들이 사용하는 무균실에서 사육돼야 한다.

누드마우스가 중요한 이유는 면역기능이 없어 인간의 암세포 등 다른 조직을 이식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암을 연구하는데 누드마우스는 필수 도구란 의미다.

필자도 쥐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누드마우스는 아니지만 한탄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등줄쥐의 군집을 찾아내야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쥐들 끼리 어떻게 바이러스가 전염되는지 경로를 밝히기 위해서다. 전염경로를 알기 위해선 감염되지 않은 깨끗한 등줄쥐가 필요하다.

우리는 감염되지 않은 깨끗한 등줄쥐 군집을 찾아내기 위해 이 잡듯 전국을 뒤졌다. 경기도 북부에서 시작해 남쪽으론 경상도 진주와 안동, 동쪽으론 강릉 해안가까지 살폈다.

그러나 혈청검사상 모두 양성반응을 보였다. 바다로 격리된 섬은 괜찮지 싶어 서해 영종도는 물론 남해 진도까지 뒤졌지만 모두 허사였다.

허탈해하던 우리에게 제주도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놀랍게도 제주도의 등줄쥐만은 1백% 한탄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쥐사냥엔 들쥐 채집가인 김수암씨가 나섰다.

당시 일본 문부성에서 유행성출혈열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려대의대에 있는 연구실로 파견된 일본인 교수들도 함께 현장에 나갔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곳에서 김수암씨와 일본인 교수들간 쥐잡기 시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인 교수 중 홋카이도의대에서 온 쯔치야교수는 오랫동안 동물실에서 연구용 쥐를 실험한 쥐박사였다.

그는 김수암씨에게 지는 사람이 술을 사는 내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각각 50개의 쥐틀을 준 뒤 다음날 아침까지 누가 많이 잡아오는가를 판가름하는 것이다. 쯔치야교수가 허름해보이는 김수암씨를 얕잡아본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김수암씨의 승리였다. 김씨가 30마리를 잡은 반면 쯔치야교수는 19마리를 잡는데 그쳤던 것이다.

그랬더니 의학박사인 쯔치야교수가 그 자리에서 국졸 출신의 김씨에게 "졌습니다" 라며 큰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술도 맘껏 얻어먹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서울로 올라와 2주 동안 체류하면서 쥐잡는 방법에서 바이러스 분리와 배양까지 많은 것을 배워갔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나를 서울롯데호텔 일식집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모두 술이 얼큰하게 취할 때쯤 도호쿠의대 우메나이교수가 갑자기 일어나 "이호왕 박사 만세" 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