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고 쫓기는 기술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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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딱풀.계산기.인주.스피커.펜.화분.전기 콘센트.슬리퍼 뒤축.껌통.시계.안경…' .

동네 잡화가게의 진열품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이지만 사실은 도청기가 감춰져 있는 물건들이다. 도청기는 이렇듯 상상을 뛰어넘는 모양으로 곳곳에 숨겨져 있다.

새로운 도청기술의 개발과 맞물려 도청기를 찾아내는 탐지기술도 그만큼 발전해, 쫓고 쫓기는 기술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레이저' 와 '템피스트(TEMPEST)' 가 첨단 도청을 이끈다. 레이저 도청은 음성파장을 레이저로 잡아내는 방식. 표적이 되는 건물 창문에 레이저를 쏴 내부의 음성파장으로 생기는 창문의 진동을 읽어낸다는 것. 도청기를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고, 사후추적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업계엔 "외국 산업스파이들이 즐겨 쓰는 수법" 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템피스트는 일종의 '컴퓨터 모니터 도청' . 모니터에서 발산하는 전자파를 안테나로 탐지해 증폭한 뒤 다른 모니터에 고스란히 재생해낸다.

미 국방부와 국가안보국(NSA) 등은 템피스트에 대한 방어능력이 없는 컴퓨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첨단 도청을 막기 위한 '방패' 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잡음을 일으켜 창문으로 들어오는 레이저 전파를 막는 잡음발생기는 이미 상용화 단계. 최근엔 모든 전자파를 그대로 흡수해 외부 유출을 방지하는 벽지도 각광받고 있다. 전투기.잠수함 등에서 이용되는 스텔스(stealth)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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