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늪…무료급식소 '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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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일 오전 10시 대구시 중구 남산2동 '자비의 집' .

동화사가 운영하는 이 무료급식소 앞에는 급식시간이 1시간 반이나 남았지만 60여명의 노인들이 줄을 섰다.

불황에 추위가 겹치면서 한끼를 해결하려 무료급식소를 찾는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 가을까지만도 무의탁 노인.장애인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제는 실직자들이 이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자비의 집을 운영하는 일진(日振)스님은 "실직자는 옷차림만 봐도 안다" 며 "IMF때보다 더 어려워졌다" 고 말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한 尹모(28)씨는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았다" 고 했다.

하루 2백~3백명이 찾던 자비의 집은 11월 중순을 고비로 급식인구가 불어나 요즘은 4백~5백명에 이른다. 이 중 1백여명이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거나 노숙자다.

10여년동안 주5회 무료급식을 해온 중구 교동 '요셉의 집' 도 2~3개월전 하루 3백여명에서 요즘은 4백여명으로 늘어났다.

이곳은 대구역 등과 가깝고 도심에 위치해 젊은층 급식인구가 절반을 차지한다.

요셉의 집을 운영하는 성모자애원 관계자는 "요즘은 하루 1가마 반이 들어가는 쌀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며 "그나마 팔달시장 상인들이 채소류를 전량 지원하고 있어 큰 힘이 된다" 고 말했다.

대신동 서문교회가 운영하는 '사랑의 집' 은 주6일간 하루 8백여명이 점심을 해결하는 대구 최대 무료급식소다.

처음엔 주3회로 시작했으나 급식을 하지 않으면 달성공원 주변 노인 대부분이 끼니를 걸러 지난 3월부터 주6일로 확대했다.

사랑의 집 임시우 집사는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하루 2백여명이 더 늘었다" 며 "비노인 급식자도 1백명에 이른다" 고 밝혔다.

현재 대구지역 무료급식소는 모두 45개소로 하루 평균 6천5백여명이 찾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이맘때의 4천5백여명보다 2천여명이 더 증가한 숫자다. 대구시는 올 한해 9억여원을 지원했지만 이는 급식소 운영비의 50%에 불과하다.

요셉의 집 관계자는 "경기가 나빠 후원이 줄고 있지만 몰래 쌀을 두고 가는 시민들도 여전히 있다" 고 말했다.

정기환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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