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돈가뭄 해소 위해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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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업들이 연말 돈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은 지난 7월부터 A+ 등급 이상의 일부 초우량 기업들만 발행해 거래되고 있는데, 12월과 내년 1월에 만기가 되는 회사채만 15조원대에 이른다.

한 대기업 사장은 "신용금고와 종금사 등 제2금융권의 자금공급 기능이 거의 마비됐고 합병 등 구조조정으로 정신이 없는 은행권은 거래 기업을 돌볼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 같다" 며 "수출.영업담당 임원까지 자금마련에 나서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모 중소기업 사장은 "기업들이 쓰러진 뒤 금융기관이 정상화하면 기업의 부실채권을 금융기관이 다시 떠안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 이라며 "금융 구조조정을 분명하게 끝내고 증시 등 직접 금융시장을 빨리 활성화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A기업은 지난달 특정 사업과 공장을 1천억원대에 매각했으나 연말 연초에 돌아올 회사채.CP를 갚는 데 부족해 다른 사업도 팔기 위해 내놓았다.

이 회사 사장은 "1998년 말보다 부채를 1조원이나 줄였는 데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여전하다" 면서 "채권단에 1천억원의 협조융자를 신청해 놓았다" 고 말했다.

B기업은 최근 유럽을 돌며 기업설명회(IR)를 열었다. 주채권은행이 합병과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더 이상 기대기 힘들다고 판단, 해외 금융기관의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이 회사 사장은 "미국계 금융기관은 조그마한 소문에도 대출을 회수하는 등 민감하게 움직여 유럽계로 거래처를 바꿨다" 면서 "IR를 통해 대출한도를 5억달러 늘렸다" 고 말했다.

C기업은 올해 경영실적이 좋지 않은 데다 신용등급까지 투기등급으로 떨어져 회사채와 CP 발행이 어렵자 사채(私債)시장을 찾고 있다.

이 회사 자금담당 임원은 "임직원들이 직접 나서면 '회사가 부도난다' 는 소문이 돌기 때문에 브로커에게 부탁해 은밀하게 자금을 구하고 있다" 면서 "사채시장도 벤처.코스닥 투자 등에 돈이 잠겨 높은 이자를 주고도 돈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고 말했다.

LG반도체를 인수해 연말에 6천억원(1천억원은 중도 상환), 내년 1월에 5천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현대전자는 최근 국내 10개 은행에서 8천억원의 신디케이트론(협조융자)을 받았다.

현대전자는 다른 금융기관을 상대로 2천억원의 추가 협조융자를 받고, 내년을 대비해 영국 웨일스 반도체공장과 보유주식을 매각할 계획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내년 플랜트건설 경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30명의 임원 중 10명을 줄이고 1천1백여명의 직원 중 일부를 명예퇴직시킬 방침이다. 삼성테크윈은 임원을 일부 내보내고 카메라 공장의 중국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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