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방송광고 시장 섣부른 완전경쟁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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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시중 화두 중의 하나는 TV화면에 등장한 도올 선생의 공자와 말총거사의 동양의학에 관한 마라톤 강의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KBS와 교육방송의 교양.교육강좌에 걸맞은 내용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제작비를 절감하면서 시청률을 높이려는 시도로서 방송사가 방송 경영과 광고 효율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방송광고 시장이 개방화.자율화.탈규제화의 흐름을 타고 개혁을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신문.방송 등 미디어 산업은 지식산업.문화산업이기 때문에 개혁에 따르는 부작용은 없는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방송도 시장원리에 맞춰 최대 이윤을 추구해야 하지만 국내 미디어 환경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미디어간의 균형 발전과 광고시장의 변화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방송광고 시장의 구조변화는 방송매체를 비롯해 신문.케이블.위성매체 등에 파장을 몰고 올 뿐만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청력(視聽力)' 이란 말은 우리에게 생소하나 이는 노동력에 대응되는 말로 방송프로를 시청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기업가가 기계나 원료를 대고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윤을 창출하듯이 방송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공해 시청자들의 시청행위라는 시청력의 대가로 이윤을 창출하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방송광고도 시청력의 반대 급부로 자산가치가 생성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그 몫은 시청자들의 것인 셈이다.

그래서 방송광고가 자사이익의 극대화뿐만 아니라 시청력의 제공자인 일반 시청자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도록 제도적.법적 장치를 통해 보완돼야 할 당위성이 생긴다.

되돌아보면 방송사의 무한경쟁과 극대이윤 추구를 언론의 소유와 경영의 자유라는 논지로 허용하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부작용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공익기구로 방송광고공사가 등장해 독점적 대행업무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광고공사는 방만한 구조와 관료적 경직성으로 방송광고시장의 자율성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며 몇번에 걸친 존폐 논의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독점체제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하자는 반론에 힘입어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다.

방송광고는 방송사에 돌리고 광고는 시장 논리에 맡기는 완전 경쟁체제의 성급한 도입은 장.단기적으로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공산이 크다.

방송광고 시장을 시장경제논리에만 맡길 경우 매체시장 전체를 주요 방송사가 독과점해 종교방송.신문.잡지.케이블 등의 광고배분 구조가 이그러질 염려가 있다.

또한 구조조정으로 위축된 업계도 방송광고비의 상대적인 인상으로 대형 광고주 위주로 재편돼 중.소형 광고주나 벤처기업의 광고기회는 위축되고 고비용 부담으로 경영난을 겪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시청력을 제공한 시청자의 권익과 방송운영의 건전성 보장을 위해 방송광고와 관련한 실질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디어랩(방송광고 판매대행사)설립 허가제를 도입해 미디어랩의 난립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공영과 민영의 영역을 구분해 방송사와 미디어랩간의 선택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민영 미디어랩의 경우도 무한이윤 추구를 억제하고 지배주주의 독주를 방지할 수 있도록 공적 자본의 투입 등 적절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결국 방송광고 제도개선의 원칙과 방향은 시장원리에 의한 일부 방송사의 자사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시청력의 제공자인 일반 시청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원우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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