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언론법 개정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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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린우리당이 15일 발표한 언론 관계법 개정안은 세 메이저 신문인 중앙.조선.동아일보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전에도 없는 '시장지배적 사업자=60%'란 등식을 만들어 이들에 족쇄를 채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신문 구독률을 강제로 끌어내릴 수 없는 만큼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정한 품질경쟁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은 신문의 점유율이 기준을 넘긴다 해도 이를 문제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문만 규제 유례 없어

열린우리당 안에 따르면 1개 신문사가 30%, 3개 신문사가 60% 이상 시장을 차지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수치를 넘었다고 해서 바로 제재가 뒤따르는 건 아니다. 독자 수를 줄일 필요도 없다. 그 지위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시장질서를 해쳤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과징금 등이 부가된다. 그 때문에 언론학계 일각에선 "일부 시민단체의 압력을 받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위헌 시비를 우려해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조항을 삭제한 마당에, 이 부분까지 빼는 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도 해석했다.

그러나 이런 시장 점유율 규정을 놓고서도 강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정진석(신문방송학) 교수 등 언론학자들은 "자연발생적인 점유율을 규제하겠다는 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들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60%란 기준을 놓고서도 말들이 많다. 공공성이 강한 신문의 특성상 공정거래법(3사의 시장 점유율 75%)보다 기준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결국 메이저 신문사들을 겨냥하는 게 아니냐는 논리다. 닐슨미디어리서치가 지난달 신문시장을 조사한 결과 중앙.조선.동아 3사의 구독률은 전체 신문시장의 74%였다.

선진국의 경우 신문이라는 단일 매체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단국대 문재완 교수). 열린우리당에서 프랑스.노르웨이 등의 예를 들었지만 이는 인수.합병 같은 특수한 독과점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또 일부 국가에선 신문.방송.라디오의 겸영이 자유롭게 허용된 상태에서 전체 여론 시장의 20~30%선을 제한한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 자체가 금지된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방송 독과점은 언급 안해

이번 법안에서 방송은 신문에 비해 변화의 충격이 약하고 큰 쟁점이 없다. 기존 시장은 물론 뉴미디어 분야까지 잠식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 3사의 독과점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공영방송의 편향성 시비를 극복할 방안도 찾아보기 힘들다. 민영방송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을 뿐이다. 홍익대 방석호(법학) 교수는 "세계적으로 신문의 자율성은 키우고 방송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는 추세인데 우린 거꾸로 간다"고 지적했다. 독일 등 언론 선진국들은 이미 1960~70년대에 매체 규제에 관한 철학을 정립했다. 신문시장에 대한 규제는 최소한이어야 하며,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엔 엄격하고 객관적인 규제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너 신문' 실질 지원을

이번 법안이 신문사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신문사의 사업 내역과 주식발행 내역 등을 시시콜콜히 문화부 장관에게 신고토록 한 내용은 과도한 신문통제라는 주장이 많다. 역시 선진국에는 없는 일이다. 광고를 지면의 50% 이내로 제한한다는 대목도 논란거리다. 기업 스스로 결정할 문제를 정부가 개입해 이래라저래라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편집규약 제정과 독자권익위원회 설치 등도 마찬가지다. 취지는 좋지만 이것 역시 신문에 맡길 영역이다. 유럽에서도 과거 '편집권 독립'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자율적 부분으로 남겨졌다.

한편 이번 법안에서 신문발전기금 운용을 규정하고, 신문유통법인을 만들기로 한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는 시각도 많다. 다만 이 경우 위기에 처해 있는 '마이너 신문'들을 살릴 실질적인 지원이 돼야지, 생색만 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이상복 기자, 강종호 사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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