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차씨 후손들은 설날 한곳에 모인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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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남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 차수교씨가 연안 차씨 문중 묘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1일 오전 경남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 뒤 야산. 남해가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특이한 묘역이 나타난다. 2200㎡의 묘역에는 가로 30㎝, 세로 20㎝, 두께 10㎝가량의 검은색 비석 120여 개가 줄지어 있다. 비석 윗면에는 이름·사망일자 등이 적혀 있고, 봉분은 없다.

연안(延安) 차씨의 문중 묘역이다. 연안 차씨의 문절공파 40세손 차수교(66)씨는 “나무가 무성해 찾기조차 어려운 어머니 산소와 집 가까이 있던 아버지 산소를 이장해 이곳에 함께 모셨다”고 말했다. 그는 “시제를 지낼 때 100여 명의 후손이 모이는 등 다른 문중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된다”고 덧붙였다.

연안 차씨가 문중 묘역 조성에 눈뜬 것은 2002년. 남해·하동 6~7곳에 조상 묘가 흩어져 있어 벌초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벌초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을 ‘징계’하는 문제를 놓고 친척 간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조상 묘를 한곳에 모으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나 커다란 봉분 모양의 납골묘를 만들지, 납골당에 모실지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문중 어른은 “화장을 하면 조상을 두 번 죽이는 꼴”이라며 반대했다.

일부에서는 “조상 묘를 파헤쳐 옮기면 후손에게 후환이 생긴다”며 걱정했다. 어렵사리 문중 묘역을 만들기로 의견이 모아졌고, ‘납골 평장묘’를 만들기로 했다. 평장묘는 매장과 화장을 혼합한 방식으로 시신을 화장해 유골함에 넣은 뒤 지하 30㎝ 정도에 묻고 지상에 와비(臥碑)를 설치하는 것이다.

결론이 나자 후손들이 남해·하동·사천 등에 있던 묘를 파 화장한 뒤 묘역으로 옮겨 왔다. 부부의 경우 하나의 비석 아래 합장했다.

남해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조상인 입향조(入鄕祖)가 맨 위쪽에 자리 잡고 43세손까지 순서대로 자리를 잡았다. 9기의 산소가 있던 묘역은 현재 120여 개의 비석에 220여 명의 조상이 모셔져 있다.

앞으로도 1100여 명을 더 모실 수 있다. 후손들은 비석 한 개당 해마다 2만원의 관리비를 낸다.

40세손 차순기(59)씨는 “후손들이 모여 성묘를 지내는 것을 보고 문중 어른들이 더 좋아하신다”며 “문중 묘역을 보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남해군에는 이런 문중 묘역이 40여 곳(한 곳당 평균 60위 봉안) 있다. 남해군이 1999년부터 ‘아름다운 강산 물려 주기’ 사업으로 납골과 평장묘를 적극 권장한 결과다. 남해군의 화장률은 68%로, 전국 평균치인 62%보다 높고 농어촌 지역의 두 배에 이른다.

남해=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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