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100호골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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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계의 단짝 골프광 신태용(右)과 김도훈이 부산 아시아드 골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태용은 최근 "100호 골을 넣을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경기도 용인의 성남 일화 숙소가 모처럼 떠들썩하다. 프로축구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때문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던 선수들이 사흘 휴가를 즐기고 왔다. 팀의 맏형 신태용과 김도훈의 얼굴이 눈에 띄게 그을었다. 나란히 부산으로 골프 휴가를 다녀오는 길이랬다.

"27홀 돌았는데, 앞서 18홀에서 딴 돈을 나머지 9홀에서 곱빼기로 잃었어요. 비행기 출발 시간만 아니었으면 9홀 더 쳤을 텐데…."

넉넉한 웃음에 경상도 사투리가 억센 신태용은 축구계에서 소문난 골프광이다. 6년 전 발목 부상으로 쉬는 동안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이라 시작했다. "특히 경기 다음날엔 골프가 최고예요. 과격한 운동 때문에 탈진한 몸을 부드럽게 회복시켜 주거든요."

지난해 성남으로 둥지를 옮긴 김도훈 역시 알아주는 골프광이다. 둘은 자연스레 의기투합했다. 경기 다음날이면 오전 6시에 눈을 떠 나란히 인근 골프장으로 향한다. "태용이 형이 핸디 10, 제가 핸디 8쯤 돼요. 둘 다 승부 욕이 강해 내기를 하면 절대 안 지려고 하죠."

내기에는 양보가 없는 두 사람이 요즘 100호 골 경쟁을 하고 있다. 각각 개인 통산 99골로 국내 프로축구 통산 네번째 100호 골에 한 골 차로 다가섰다. 둘은 '정정당당한 대결'을 위해 차경복 감독에게 모두 '페널티킥 사절'을 선언했다.

신태용은 "사실 (100호 골을) 누가 먼저 넣든 상관없어요. 둘 다 프로축구에서 누릴 만한 영예는 다 누린 걸요. 이건 자신과의 싸움이자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우리 모습이죠"라고 말한다.

고교 시절 청소년대표팀에서 만나 친해진 두 사람은 K-리그에선 경쟁자로, 대표팀에선 동지로, 사석에선 벗으로 지내왔다. 호적상으론 동갑이지만 실제론 신태용이 한 살 많아 김도훈이 깍듯이 형으로 모신다.

"형 덕분에 축구 인생이 확 바뀌었어요. 전엔 축구밖에 몰라서 경기가 안 풀리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하지만 성남에 와 형이랑 지내면서 사람도 많이 사귀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웠어요."(김)

"능청은…. 열한살 어린 마누라한테 늦장가 들어서 재미있는 거지. 총각 시절엔 밤마다 우리 집에 와 밥이고 술이고 얻어먹더니, 요샌 코빼기도 안 비쳐요."(신)

서른 중반, 또래 선수들이 하나 둘 축구화를 벗는 나이다. 하지만 둘은 은퇴를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예전보다 몸에 신경을 더 쓸 뿐이다.

신태용은 먹는 데 많이 투자한다. "한달에 300만원은 보양식을 사먹는 데 쓰죠. 골프도 몸 관리의 일종이고요."

김도훈은 절제를 원칙으로 한다. "웨이트트레이닝을 거르지 않고 해요. 앉은 자리에서 소주 두세 병은 마시지만 몸이 못 이기면 누가 뭐래도 자리를 털고 나와요."

올해 목표는 같다. 개인상보다 리그 하위를 맴도는 팀 성적을 올려놓는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신태용은 "도훈이가 100호 골이 아니라 리그 최다 기록인 109골을 넘어서길", 김도훈은 "현재 396경기로 최다 출장기록을 갖고 있는 태용이 형이 500경기까지 기록을 이어가길" 바란다.

성남은 16일 포항 스틸러스와 원정경기를 한다. 영예의 네번째 100호 골 주인공은 누구일까.

용인=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신태용은

▶출생=1970년 10월 11일 경북 영덕

▶체격=1m75cm.70㎏

▶가족=부인 차영주(33)씨와 2남

▶학교=영해초-경북사대부중-대구공고-영남대

▶소속=성남 일화(92년 1월~현재)

▶국가대표 경력=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96년 아시안컵, 97년 한.일전

▶주요 수상=프로축구 92년 신인왕, 96년 득점왕, 95년.2001년 MVP

▶프로축구 396경기 99골 67도움

*** 김도훈은

▶출생=1970년 7월 21일 경남 통영

▶체격=1m83cm.77㎏

▶가족=부인 김민정(23)씨

▶학교=유영초-통영중-학성고-연세대

▶소속=전북 현대(95~97, 2000~2003년), 일본 J리그 빗셀 고베(97~2000년), 성남 일화(2003년~현재)

▶국가대표 경력=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96년 아시안컵, 98년 프랑스 월드컵

▶주요 수상=프로축구 2000.2003년 득점왕, 2003년 MVP

▶프로축구 219경기 99골 34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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