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기업들] 5·끝 투명경영이 빛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신도리코는 매달 초하루 대표이사가 직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연다. 우석형 사장은 지난 1일 올해 매출과 이익에 대해 자세히 알린 뒤 내년 경영환경을 걱정했다. 그는 최근 미국 렉스마크사에 3억달러어치를 수출하기로 계약한 경위도 설명했다.

신도리코는 1960년 창립 이래 '3(주주): 3(종업원): 3(재투자): 1(사회환원)' 의 이익분배 원칙을 지켜왔다.

96년 증시에 상장했으며, 부채가 전혀 없다. 외환위기 이후 내수가 급감했는데도 세전 경상이익이 지난해 6백70억원(매출 2천6백13억원)에 이어 올해엔 7백억원(매출 3천억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40%(주당 2천원)의 배당을 실시했고, 올들어 제조업체의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한 가운데서도 주가가 2만7천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은 "작지만 투명경영이 뿌리내린 대표적 기업" 이라고 평가했다.

◇ 경영이 투명해야 자금조달 잘돼〓현대전자가 은행간 협조융자를 모집하자 반도체 경기가 안좋고 빚(9조원 안팎)도 많은 기업에 누가 참여하겠느냐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씨티은행 등 10개 국내은행이 참여해 8천억원을 모았다.

현대전자 관계자는 "은행들이 투명 경영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며 "박종섭 사장이 선진국형 투명경영이 아니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해 미국 회계처리 기준(GAAP)에 맞추는 등 재무 투명성 확보에 노력한 결과" 라고 말했다.

국민은행과의 합병 추진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주택은행도 김정태 행장이 투명경영과 주주중시의 지배구조 개선을 선언했고, 국내 은행으론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국제적인 신뢰도 얻었다.

주택은행은 98년 당시 국내 회계기준으로 6백20억원의 흑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기준(채무상환능력 기준)을 적용해 4천5백억원의 적자라고 발표했다.

이를 보고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을 내다팔았으나 외국에선 되레 투명한 기업으로 평가했다.

굿모닝증권은 대주주가 쌍용그룹에서 미국 투자기관으로 바뀐 뒤 기업 지배구조위원회를 설치해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를 분리했다. 이사회 기능을 활성화해 손익구조상 업계 2위로 급성장했다.

위성방송 수신기 제작업체인 휴맥스는 한달에 한번씩 경영상태를 공개해 국내외 주주와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다.

89년부터 법정관리 상황에 놓였던 중견 건설업체 고려개발㈜도 오풍영 사장 등이 직접 나서 종업원과 주주를 상대로 기업설명회를 하는 등 노력한 끝에 98년 법정관리를 졸업했으며 침체한 건설경기 속에서도 지난해 2백69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렸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연구위원은 "경영이 투명한 것으로 평가받으면 싼 자금을 조달하고 우호적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등 효과가 매우 크다" 면서 "상당수 국내 기업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관습에 매달려 있다" 고 지적했다.

◇ 기업 투명경영 평가 도입 채비〓증권거래소는 내년부터 '투명경영 10대 기업' 을 뽑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일 ▶이사회의 독립성▶주주총회 운영 실태▶배당률▶공시의 성실성 등을 토대로 투명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확정할 예정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투명경영을 해야 주가를 관리하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삼성전자(외국인 지분율 54.61%).SK텔레콤(33.71%).주택은행(65.14%).현대자동차(41.19%)등 국내 주요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으며, 상장기업의 시가총액 대비 외국인 투자비율은 28%에 이른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국내 시장이 개방돼 앞으로 선진국 수준의 투명경영과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며 "집단소송제 도입 등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 투명경영을 하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다.

김시래.서익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