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욕하며 배우는 언론공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지 50여년이 흘렀어도 한국의 언론자유상황은 내세운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 언론사는 숱한 권력의 간섭.공작.탄압과 이에 대한 언론의 투쟁.타협.굴종 사례로 점철돼 있다.

1987년 6.29선언 이후 언론상황이 개선되긴 했지만 언론을 길들이려는 권력의 책동은 여전하다.

급기야는 야당까지 언론을 자당에 유리하게 길들이겠다는 공작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60~80년대의 군부 권위주의 시절과 그 이후의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3~5공시대의 언론통제는 물리적.행정적.정치적.입법적.경제적 통제가 모두 동원된 그야말로 전면적 통제였다.

중앙정보부.보안사 등 정보기관원의 언론기관 상주 내지 출입, 자의적 보도관제, 언론인 연행조사.폭행.폭언이 다반사로 자행됐다.

특히 유신 이후 수많은 언론통제 법령의 제정과 긴급조치의 발동은 권력과 언론의 갈등을 언론의 무력화로 해소하려 한 '입법적 폭거' 였다.

5공에서는 언론인 해직, 언론기관 통폐합, 언론기본법 제정으로 언론의 숨통을 쥐고 매일 매일의 '보도지침' 으로 언론을 다스리려 했다.

그야말로 언론통제의 제도화였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의 책동이 시대의 변화나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무한정 억누를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대한 권력의 항복선언이라고 할 6.29선언 이후 권언관계는 상당히 균형화됐다.

그렇지만 권력은 언론을 비판자로 보다는 협력자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의 비판을 견기기 어려워하고 협조를 받기에 부심한다.

이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사와 언론인의 약점을 수집해 압력을 행사하든가, 혜택을 주어 언론을 조종하려 하는 등의 공작도 불사한다.

민주화를 코에 걸고 다니는 김영삼(金泳三)정부와 김대중(金大中)정부에서도 이로 인한 정부와 언론의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YS.DJ정권 모두 초기부터 언론기관의 우호적 인맥구축에 나섰다. 현정부는 출범초 5개의 여권 매체의 사장 중 MBC를 제외한 4명을 바꿨는데 그 모두를 친분이 깊은 외부인사로 채웠다.

여권 매체 이외의 언론사에서도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편집.보도국장 같은 요직에서 호남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언론사 쪽에서도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와 정보수집의 편의상 그런 인사를 한 측면이 있지만 권력 쪽에서 마음에 안 드는 특정 언론사 핵심간부에 대해 '기피인물' 이란 딱지를 붙여 언론사쪽에 불평을 하거나 흘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

언론사의 인사뿐만 아니라 세무사찰, 언론사 간부에 대한 도청 및 뒷조사, 권력 외곽단체나 지지층을 동원한 언론사 공격 등 언론사에 간접적 압력을 가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나라당이 '언론대책 수립' 이라는 문건에서 적대적 집필진의 비리 등 문제점 자료를 축적.활용하고 우호 언론그룹을 조직화하는 방안 운운한 것도 똑같은 발상이다.

이 문건이 폭로되자 집권 민주당이 '비열한 공작' 이라고 펄펄 뛰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일로 보아 실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욕하면서 배운다고 야당이 여당의 솜씨를 판박이로 닮아가고 있으니 정권이 교체돼도 언론상황이 나아지긴 애시당초 그른 것 같다. 배신감과 절망감을 떨치기 어렵다.

하긴 언론자유란 누가 가져다 주는 것도, 권력이나 야당이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언론과 언론인이 용기와 균형감을 갖고 쟁취해 지켜가야 하는 가치다.

언론이 용기를 갖고 당당하려면 스스로 도덕적으로 꿀릴 데가 없어야 한다. 언론의 윤리와 책임이 강조되는 건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또한 언론은 어느 경우에도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객관보도의 원칙, 독립성의 원칙에 투철해야 한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우리 언론이 몸으로 체험한 일이다. 언론으로선 권력과 정치가 언론에 끼어들고 싶어도 끼어들 빌미를 주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 고려대 초빙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