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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미국이 부럽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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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특히 플로리다주 몇몇 카운티의 수개표를 둘러싼 각급 주법원과 연방 대법원의 드라마처럼 뒤집히는 판결들과 최종 승복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미국 민주주의의 원동력이 선거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고어가 연방 최고법원의 판결에 깨끗이 승복했지만, 그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불복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에서 다시 투표한다면 고어에게 표를 주겠다는 이들이 더 많다. 사실상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크다.

그러면서도 부시가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믿는 국민이 8할이나 된다. 제도나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불완전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에 의해 전체가 뭉쳐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양편의 광적 지지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민들의 마음에 도도히 흐르는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다.

세상에서는 부모들이 싸움을 계속하고 별거하거나 이혼하는 지경까지 이르면 그 집을 '결손 가정' 이라고 부른다.

패가 갈려서 싸우는 단체는 '결손 단체' 라고 해야 할 것인가. 어떻든 나는 가끔 싸우는 집안 출신이다.

먼 과거의 일은 제쳐두고라도 2년 전에 있었던 총무원장 선거과정만 생각하면 부끄럽고 속이 쓰리다.

1단계는 선거 예고가 있었다. 2단계는 당선 유력 후보의 출마자격이 있느냐의 문제로 옮겨졌다.

3단계는 그 유력 후보의 반대파 지도자가 종단을 바로 잡는다는 명목으로 총무원 청사를 강제로 점거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4단계는 진짜 폭력으로 총무원이 점거됐다.

5단계는 그것을 지키거나 탈환하기 위한 난투극이 밤낮으로 벌어져 CNN 방송에까지 보도됐다. 현재까지도 재판이 계속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세상을 놀라게 할 단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불교계에서만 선거가 싸움으로 변한 것이 아니다. 한 신흥종교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사망한 후 후계자를 선출하는 문제의 여파로 도장에 폭력으로 침입해 점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양편이 일반 국민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상대 비난의 내용을 담아서 번갈아가며 누차 일간지 하단에 전면 광고로 게재했다.

한데 자기 뜻이 합리적으로 성취되지 않을 경우 억지를 부리는 마음의 뿌리는 종교단체가 처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성에서 나왔다. 그 증거의 일단을 보자. 농가 부채 문제 해결에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일부 농민 지도자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죄 없는 일반인들의 정상적인 통행을 방해했다.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은행 합병을 논의한다는 소문에 한 은행 노조원 3백여명은 은행장을 하루가 넘도록 감금하고는 마침내 '합병 논의 일단 중지' 의 선언을 받아냈다.

또 있다. 서울의 망원동 일부 주민들은 지하철 건설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6호선 철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여서 오랫동안 열차가 운행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 국민 가운데도 '똑같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저와 같이 싸우고 억지를 쓰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만 다행이다.어지러울 정도의 혼돈 속에서도 마침내 단합하고 민주질서로 회향하는 미국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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