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흑인 카드로 '파월' 국무장관 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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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조지 W 부시 정권의 첫째 카드는 예상대로 콜린 파월이었다.

63년 전 뉴욕 브롱스구(區) 할렘가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자메이카 이민의 후손이 미국 역사상 첫 흑인 국무장관이 된 것이다.

흑인유권자들로부터 8%밖에 득표하지 못한 부시, 그리고 '개표 전쟁' 이 끝난 뒤 흑인의 분노에 봉착한 공화당 정권에 파월의 임명은 어떤 화합조치보다 위력적일 것이다. 미국 역사상 흑인으로선 가장 고위직에 오른 파월은 아메리칸 드림의 살아 있는 상징이 됐다.

피부색의 한계를 뛰어넘어 파월은 현재 부시보다도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같은 그의 '이미지 파워' 는 취약한 지지도로 출발하는 부시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파월이 국민 앞에 영웅으로 등장한 것은 1991년 걸프전 때부터다. 89년 조지 부시 대통령 때 합참의장에 오른 그는 부통령 당선자인 딕 체니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파월은 93년 클린턴 대통령 때 소말리아에 대한 병력파견을 둘러싼 마찰로 퇴역했다.

만약 파월이 백인이라면 96년 대선에서 밥 돌 대신 공화당 후보가 돼 정권을 탈환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후보로 거론되자 자신의 한계에 선을 그었다. 인기있는 흑인 대통령후보가 받을 수 있는 암살 위협도 그가 고려한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

외교노선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지만 능력면에서 파월은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월은 뉴욕시립대학 학군단(ROTC)장교로 육군에 들어갔으며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89년 합참의장 임명 때도 15명의 4성장군 후보 중 가장 후배였다.

파월은 군경력의 대부분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국방부.합참 등 워싱턴에서 근무해 정치적 메커니즘에 익숙하다. 그는 63년과 68~69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파월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깊은 회의를 갖고 있다. 그는 지뢰를 밟은 병사가 자신의 품안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파월은 미국이 확실한 대의와 명분 없이 세계 분쟁에 개입해선 안되며 군사력 사용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이 일단 개입하면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행정부 내 적잖은 사람들은 미국이 군사력 위협을 중요한 외교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파월의 정책이 어떻게 조율될지 주목된다.

파월은 2차세계대전 후 유럽부흥 지원을 지휘했던 조지 마셜과 알렉산더 헤이그에 이어 군인 출신으로선 세번째로 국무장관에 발탁됐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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