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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대혼돈… 새 주소 선점 '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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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도메인이 범람하고 있다. 정확한 정의나 표준 없이 새로운 서비스들이 마구 쏟아지면서 대혼돈 상태다. 너도나도 한글도메인.음성도메인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자랑한다.

기업체의 정보통신 담당자들은 새로운 도메인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도메인을 확보하기 위해 아우성이다. 만약 다른 업체나 개인에게 회사 도메인을 빼앗길 경우 시말서는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기술도 없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새로운 도메인 체계라고 떠드는 곳도 적지 않다.

사실상 기존의 도메인 주소로 연결해 주는 '키워드' 역할밖에 못하면서도 신종 도메인인 것처럼 과장,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글 도메인 서비스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자 외국 업체들까지 덤벼들어 국내외 업체간 분쟁까지 빚어지고 있다.

◇ 또 다른 거품인가=지난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베리사인사의 스트래튼 스틀래보스 사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베리사인사가 지난달 10일 한글 최상위 도메인 (한글.com)의 등록 접수를 시작했지만, 실은 그 이전에 주요 도메인이 편법적으로 선점됐다는 문제제기가 쏟아진 때문이다.

그는 "이같은 가능성을 등록개시일 6~8주 전부터 알고 있었다" 며 "선점된 도메인이 전체 도메인의 2% 정도에 불과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 해명해 국내 관계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실제 인기있는 특수단어(슈퍼키워드) 도메인 1천여개가 사전에 등록되는 바람에 일부 네티즌들은 '한글도메인 사기 사태' 라고 규정하고 집단 소송을 준비할 정도로 격앙된 상태다.

지난 13일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음성키워드 시연회에서도 공방이 있었다.

㈜한국음성도메인센터가 "세계 최초로 음성으로 홈페이지를 찾는 음성도메인 시대를 열었다" 며 개최한 시연회를 본 참석자들이 사실상 기존 도메인으로 연결해 주는 키워드 서비스가 아니냐며 따진 것이다.

이에 대해 이 회사 차정만 대표는 "IMT-2000 등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본격화하고 음성인식 기술의 발전으로 음성을 통한 인터넷 접속이 보편화하면 음성도메인이 표준으로 자리잡게 될 것" 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등록 실시 보름 만에 30대 기업 등에서 2만5천여건을 신청하는 등 반응도 폭발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표준화가 되려면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선결돼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까지는 변수가 많다고 지적한다.

국내 도메인을 관리하는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의 한창수 연구원은 "현재 도메인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된데다 이용자들이 정확한 이해없이 도메인은 무조건 돈이 된다는 생각에서 선점에 나서 이같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며 "1년 정도 지나면 대표적인 서비스만 살아남아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 이라고 말했다.

◇ 독점과 문화적 종속 우려〓15일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열린 '한글인터넷주소의 의의와 발전방향' 설명회. 한글 키워드 서비스 업체인 넷피아닷컴이 개최한 행사장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발표자로 나선 한글문화연대 김영명 대표는 "한글인터넷주소 관리를 강대국에 빼앗기다 보면 우리의 문화 정체성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고 열변을 토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주주로 있는 리얼네임스사의 한글 키워드 서비스를 겨냥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한글인터넷주소를 한국에서 관장하지 않을 경우 개인신상정보나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물론 기술적.문화적 종속도 심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이날 설명회를 후원까지 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MS에 맞서 국내 업체들이 뜻을 모은 것은 국익 차원에서 매우 의미있는 행동" 이라고 말했다.

넷피아닷컴의 이판정 대표는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는 MS의 익스플로러를 이용한 서비스는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 며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 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분위기에 리얼네임스측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본사에서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한국 지사는 조용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 관계자는 "등록을 대행하고 있는 한글인터넷센터(HINC)에 관리기능과 선진기술을 이전할 예정" 이라며 "국지적인 이익보다 해외시장을 겨냥한 큰 시각으로 봐달라" 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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