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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힘든 이웃에 희망의 불씨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9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영화까지 만들어진 것은 왜일까. 바쁜 방송 스케줄 속에서 언젠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 비디오를 빌려본 뒤 품었던 의문이다.

생각 끝에 이 영화의 스토리가 우리 인생사를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론을 내려봤다.

숱한 희생자를 낸 다른 대형 선박사고도 많았고, 그들 대부분의 사고는 사람들이 손쓸 겨를없이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이에 비해 타이타닉호는 몇시간에 걸쳐 서서히 가라앉았다.

뿐만 아니라 죽어야 할 사람과 살아야 할 사람을 가르고 심판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도 연출됐다.

타이타닉 참사에서 보듯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선 1등석 승객과 3등석 승객이 따로 없다.

선체에 구멍이 뚫려 배가 서서히 가라앉아 가는데 1등석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우리 사회를 배에 비유해 본다.

우리 모두는 공동체라는 한 배를 같이 탔다.

배가 뒤뚱거리고 가라앉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믿음의 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끈이 바로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과 사랑이라고 생각해 본다.

내가 나눔과 이웃사랑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는 기회는 최근에야 찾아왔다.

어릴 적부터 '이기적이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라' 는 가정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온 게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12월 드라마 '왕과 비' 팀의 일원으로 명동에서 이웃돕기캠페인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게 됐다.

그 때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명예대사라는 자리를 제안받았다.

사실 평소 생각과는 달리 겁이 나기도 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나 역시 타이타닉호 1등석 승객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 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후 이웃돕기를 위해 '사랑의 빵 나누기' '사랑의 열매 달기' 캠페인 등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고 모금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다.

10년 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 때 정신대에 끌려간 여옥의 역할을 진짜 한번 잘 해보기 위해 일부러 밥을 몇끼 굶은 적이 있어 배고픔의 정체를 어렴풋이 느껴 보았다.

자원봉사를 끝낼 때마다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미흡한 점을 반성하곤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의 이웃돕기는 생활 속에서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겨울철에 반짝 지나가는 일회성 활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대부분의 가정이 최소한 한 곳의 사회복지기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기부금을 낸다.

자원봉사자가 1억명이 넘고, 국민 1인당 기부금은 약 60만원에 달한다.

또 유산을 사회에 되돌리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경제 규모가 훨씬 적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반성의 여지가 많다.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막상 이를 표현하고 실천하는 데는 망설이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찬 바람이 몰아치고, 가로수엔 마지막 남은 잎새들이 처량하다.

그런 가운데 움츠린 시민들의 어깨 위로 캐럴이 흐르고, 도심 곳곳엔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반짝 빛을 낸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밝은 빛을 본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옷깃 한쪽에 달린 '사랑의 열매' 다.

이달 초 청와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내외에게 전달하기도 했던 그 사랑의 열매를 요즘엔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그늘 속 이웃들에게 따사로운 햇볕이 되기엔 부족하다.

이제 이웃에 따뜻한 눈길을 돌릴 때다.

15만명의 결식아동과 22만명의 점심을 굶는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최소한의 안정과 희망을 줘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의 배가 목적지에 안전하게 다다를 수 있다.

채시라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 '사랑의 열매' 를 사주신다면 그 작은 힘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밝히는 희망의 불꽃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채시라(탤런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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