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윤성근 '당신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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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내가 그대에게 하는 젖은 말들이

그대 영혼을 조금이라도 흔들지 못한다면

시는 있어서 무엇하리

내가 그대를 앉은 자리에서 편찮게하는

바로 그 마음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작은 증거

오늘은 이미 날도 어둡고

이 어둠의 그리움조차 길을 잃었지만

아아, 나는 거듭거듭 이 말을 하고 싶네

기다려야 하네 먼 길을 가야 하네

바람 부는데 몸 상한 갈대처럼

누워서는 안되네

- 윤성근(40) '당신을 위하여' 중

말의 끝에는 시가 있다. 시는 침묵일 수도 있고 쏟아지는 눈발이나 별이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대에게 가 닿지 않는다면 천의 말, 만의 말이 있어 무엇하며 시는 또 어디에 쓸 것인가. 윤성근은 그대의 영혼을 흔드는 바람 한 올의 시를 위하여 오늘도 거듭거듭 말을 쏟아놓고 있다.

목숨이 있는 한 기다려야 하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이 말의 끝없는 떠돌이, 누가 알까 저문 날에도 불밝혀 가는 이 아픈 증거를.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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