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경제 해법 직설 대담] 上. 새 리더십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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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대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 하는 선을 넘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3년 전과 비슷한 위기가 재발할 수도 있다는 흉흉한 예측까지 나돌고 있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조차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전문가 대담을 두차례 마련했다. 첫회는 원로급(박승 중앙대.송병락 서울대 교수), 다음은 중견학자들(박원암 홍익대.윤창현 명지대.전주성 이화여대 교수)의 진단과 처방을 듣는다.

◇ 위기원인, 구조조정

▶박승 중앙대 교수=지금의 위기는 상황 자체의 위기가 아니라 대처능력의 부재에서 온 것이다.3년 전 외환위기가 대외적 위기라면 지금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에서 초래된 대내적 위기다.

이런 대내적 위기는 1960년대 이후 여러차례 겪었던 것이다. 부실기업 정리도 과거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부실정리 과정에서 고통을 국민들에게 분담시키는 방법인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지난 40년간의 리더십은 권위주의적이었다. 당시 동원된 방법은 세금을 깎아주거나 돈을 많이 찍어내는 식이었다.

이제 이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선진적이고 시민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국민 각자가 역량을 모아 부실에 따른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송병락 서울대 교수=동감한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나와야 할 때다. 국가경영엔 네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계획이 있어야 하고 조직화.리더십과 함께 통제가 있어야 한다. 가장 아쉬운 것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 각계 각층에서는 자기 몫만 챙기려 한다. 일본은 올해를 포함해 2010년까지 10년간 목표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과학기술.교육의 체계를 잡아 국가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몇몇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지 말고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을 수 있는 체제구축이 시급하다.

지금 이같은 중장기 계획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부채비율이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만 따지고 있는데, 답답하다.

▶朴교수=구조조정이란 갑자기 밀어닥친 고임금과 개방이라는 생존질서의 변화에 맞춰 기업이나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 위기의 직접 도화선은 대우사태다. 기아가 망했을 때 빚이 10조원이었는데 대우의 빚은 1백조원이다.

그 가운데 60조원은 국민이 갚아야 한다. 국민 1인당 1백50만원을 부담해야 대우문제가 풀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적어도 내년까지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된다. 상당한 실업도 예상된다.

▶宋교수=구조조정의 본질은 '경쟁력 향상' 이다. 지금은 마치 퇴출이 지상과제이고 그에 따라 경제위기를 초래한 기업을 처벌하는 쪽으로만 흐르는 것 같다.

스위스 국가경영연구소(IMD)는 한국 정부의 경쟁력을 꼴찌로 평가했다. 정부가 개혁을 서두르고 있는데, 꼴찌정부가 기업을 개혁한다고 한들 얼마나 잘 할 수 있겠는가.

내년 2월까지 구조개혁을 마친다는 정부 발표를 외국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마치 초등학생을 내년까지 일류대학에 진학시키겠다는 말과 같다. 내년 2월까지 못하면 상황이 더 악화된다.

▶朴교수=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에 넣어 생긴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한양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주택공사가 한양을 인수할 때(당시 朴교수는 주택공사 이사장이었음) 재무부에 한양이 공사 중인 아파트만 맡아서 완공하고 나머지는 청산하자고 했다.

그러나 주택공사는 전체를 인수해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줘가며 살려보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10여년간 엄청난 돈만 쏟아부은 것이다. 현 경제팀이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 비용과 효과를 잘 따져봐야 한다. 한국에서 법정관리로 가는 기업의 3분의2 가량은 파산감이라는 게 외국인들의 시각이다.

▶宋교수=구조조정을 하는데 참고 모델이 없는 것 같다. 마치 미국 사람 흉내내려고 머리를 염색하고 성형수술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기업 중 삼성전자.포항제철.SK텔레콤 등은 포천지에 의해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혔다. 이같은 기업이 있는 만큼 정부는 기업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을 모르는 관리들이 기업정책을 펴다 보니 부실기업 정리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하는 것이다.

◇공적자금·농가부채

▶朴교수=최근 중앙일보가 지적한 공적자금 문제를 좀 따져 보자.공적자금은 두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위기의 단기 해법으로 충분한 양의 공적자금을 조속히 투입하는 것과 금융신용을 회복시키는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신용만 회복되면 경제에 활기가 돌기 시작할 것이다.공적자금이 주인없는 관리방식으로 계속 남을 것이 걱정된다.정부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만들어 관리한다고 하지만 효율적인 감시와 회수에 대한 장치들이 더욱 보완돼야 할 것이다.

▶宋교수=금융신용 회복을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도 중요하지만 지배구조 개선이 더 시급한 과제인 것 같다.

관치금융 때문에 세계적인 금융전문가를 키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금융기관의 경영개선이 안된다고 해외매각 등에 주력하기 보다는 운동팀 처럼 외국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전문가를 비싼 돈을 주고라도 영입하는게 좋을 것이다.그 정도 돈은 금융시스템이 정상으로만 회복된다면 값진 지출이 될 것이다.

▶朴교수=농가부채 경감을 주장하며 최근 농민들이 시위를 했는데 부채는 늘고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니 농민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그러나 어려움은 농민만이 아니다.망한 기업의 근로자에 비해 농민이 더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은행에 공적자금 주면서 농가부채는 왜 안 줄여주냐’는 주장은 억지다.공적자금은 기업도산으로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데 쓰는 돈이다.농민들이 어렵지만 지금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정부는 농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성의표시는 해야 할 것이다.

▶宋교수=정부가 농민을 도와줄 때 좀 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생산성이나 경쟁력 향상이 가능한 농민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모든 농민의 부채를 탕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생활능력이 없는 농민을 도와주는 것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할 일이다.

◇노사갈등

▶朴교수=노사문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원론적으로 노동운동은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첫째는 노조가 기업주와 협력해 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조가 기업주와 투쟁해서 노동자의 몫을 키우는 것이다.노조는 지금까지 첫번째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정부가 산업정책으로 기업을 지원해 주다 보니 망할 염려가 없었던 것이다,

노조는 그러나 달라진 현실을 봐야 한다.저임금의 매력이 없어졌고,차입 경영도 어려운 데다 시장이 개방돼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노동운동이 기업의 경쟁력을 먼저 생각하고 그 후에 파이를 생각해야 한다.40년전의 노동운동을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몇사람의 해고를 막겠다고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개혁이 가장 부진한 공기업 부문은 이들 기업이 주인이 없는데서 출발한다.정부가 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宋교수=우리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강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펀드멘털은 첫째로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는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가 잘되는 것이고 둘째는 정치안정,셋째는 교육이다.노조의 목소리에 따라 정부나 기업이 끌려가다 보면 시장경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기업 퇴출과정에서 발생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내년 경제정책은

▶朴교수=이미 언급한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연구기관들은 내년 우리 경제가 성장 5%,물가상승률 3∼4%,경상수지 흑자 50억∼70억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정도의 거시지표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체감 성장률이 5%보다 훨씬 낮게 느껴지더라도 성장률을 높이려고 부양책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물가와 국제수지를 지키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성장률과 실업은 감수해야 한다.일부에서 일고 있는 내수부양책을 쓰자는 의견은 안될 말이다.

▶宋교수=국제수지 흑자가 50억달러 이상되면 내년 외환보유고는 1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다.현재 국내위기가 외환위기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외환보유고 덕이다.수출확대 ·수입억제 쪽으로 정책방향이 모아져야 한다.

▶朴교수=경제팀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지 의문이다.경제팀도 책임이 있지만 정치권·국민 등 각계가 충분히 경제정책을 지원했는지 의문이다.오히려 노동자·언론·정당·농민 등이 구조조정에 동참해야 한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언론이 정치권과 정부를 계도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고통분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유도해야 한다.

▶宋교수=미국 처럼 우리나라도 경제전문가가 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정치와 경제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정치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경제팀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리=송상훈·서경호 기자

[송병락 교수는…]

▶대구상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남가주대 경제학 박사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위원

▶한국개발연구원(KDI)수석연구원

▶하버드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서울대 부총장

▶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저서 : '마음의 경제학' '한국경제론' '경제는 시스템이다'

[박승 교수는…]

▶이리공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장관

▶주택공사 이사장

▶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저서 : '한국경제성장론' '경제발전론' '한국경제정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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