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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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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반도에서 기록상 최초의 지진은 서기 2년, 고구려 유리명왕 21년 8월이다. 이후 1905년 인천에 근대적인 지진계가 설치되기까지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유감(有感) 지진이 1800회에 이른다. 가장 강력한 지진은 신라 혜공왕 15년(779)의 일이다.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 집이 무너지고 100여 명이 죽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선조 30년(1597) ‘함경도에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여덟 번이나 지진이 연속해 일어나 담벽이 흔들리고 새와 짐승들도 놀랐으며, 이로 인해 병들어 누워 일어나지 못한 이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숙종 7년(1680)에는 지진을 제때 보고하지 않은 관상감(觀象監)의 관원이 추국(推鞫)을 받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지진계는 중국 후한의 장형(張衡)이 132년에 개발한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다. 지름이 약 2m인 청동 용기의 바깥쪽에 구슬을 입에 물고 있는 8마리의 용이 방위에 따라 위치해 있다. 지진을 감지하면 지진이 난 쪽의 용 입에서 구슬이 튀어나와 아래쪽 두꺼비 입으로 떨어지게 설계된 것이다. 이때 일어나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지진 발생을 알린다. 당시 장안으로부터 600㎞나 떨어진 농서지역의 지진을 맞혔다고 한다.

현대의 지진계는 미국의 찰스 리히터가 개발했다. 그는 지진을 ‘규모’로 나타내는 방안도 고안했다. 이에 따르면 ‘재앙’ 수준인 규모 8 이상은 연간 1회꼴로 발생한다. 지난달 아이티 지진은 7.0이다. 이번 수도권 지진과 같은 규모 3.0 이상은 세계적으로 연간 13만 회가 일어난다.

지진계가 발달해도 동물의 본능에는 못 미치는가.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두꺼비떼가 출현했고, 일본 고베 지진 때는 개와 고양이가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며 동물의 예지 능력에 주의를 기울인다. 실제 북한은 2005년 인민일보를 통해 평양 대성산 중앙동물원의 앵무새와 말 우리에 동물 지진감시초소를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광시자치구 지진국은 ‘뱀은 120㎞ 떨어진 곳의 지진도 3~5일 전에 감지한다’며 카메라와 인터넷을 활용해 뱀 농장을 감시한다고 한다.

바람이 지구의 호흡이라면, 지진은 맥동(脈動)이다. ‘살아 있는 지구’인 것이다. 다만 여기에 기생(寄生)하는 인간들이 이를 잊거나 외면할 뿐이다. 지난해도 한반도에 60차례의 지진이 있었다. 안전지대는 없다. 그저 지구와 잘 공생(共生)하는 수밖에.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