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노벨상 수상연설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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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벨 평화상은 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다.

오늘 노벨 평화상을 제게 준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 전개되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다.

나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가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고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철수를 최대쟁점으로 주장했다. 나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깊은 결단이었다.

나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나아가 일본 및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

이런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가 민주화를 위해 수십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닥친 반론(反論)이 있다. 아시아에는 서구(西歐)식 민주주의가 적합치 않으며 그런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채택될 때 훌륭하게 기능해 왔다.

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많은 사례가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다. 또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은 지난 2년6개월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다.

나는 독재자들에 의해 일생 다섯번에 걸쳐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다. 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 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다.

내가 이런 시련을 이겨내는 데는 우리 국민과 세계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 동시에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첫째, 나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오고 있으며 실제로 체험했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나를 납치, 바다에 던져 수장(水葬)하려 했다. 그때 나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또하나 나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왔다. 80년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 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正義必勝)' 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나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 무한한 책임의 시작이다. 나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드 노벨경이 우리에게 바라는 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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