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유다의 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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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연극 ‘유다의 키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사건을 통해 사랑과 우정, 인생과 예술의 의미를 묻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일 뿐 아니라 연극의 계절이다. 곳곳에서 연극제가 개최되고 다양한 작품이 공연되어 오히려 연극 정보의 홍수에 쓸려버릴 지경이다. 이런 속에서 특별하게 진지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으로, 극단 '풍경'에서 공연하는 '유다의 키스'(31일까지, 아룽구지 극장)가 그러하다.

이 작품은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의 1998년 작으로, 19세기 영국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사건을 취급한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여성 연출가(박정희)가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선정적이고 문제적인 사건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선정성에 대한 관객들의 통속적인 기대는 정교하게 짜여진 텍스트의 올과 결 안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작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사건을 취급하면서도 그것을 행동으로 무대 중심에 놓기보다는 남성 동성애자 예술가에게 있어서 사랑과 우정은 무엇인가, 인생과 예술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다소 사변적(思辨的)으로 묻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대사의 비중이 크고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분명히 이 작품의 대사는 아름답고 시적이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 세계에 근거하여 그를 신화화시키고 있는 이 작품의 문학성은 그를 모르는 한국 관객에게는 공허하기 십상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영국의 문화계 중심에서 견뎌야 하는 고통과 동성애자로서 받아야 하는 모멸과 냉대를 100여년 후의 한국 관객이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1막에서 시종일관 냉정하고 낮은 어조로 진행되는 오스카 와일드(김정호), 로비(정승길), 보씨(신홍석)의 대사는 시적 리듬은 주지만 감정의 변화를 뚜렷이 싣고 있지는 않다. 2막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사건 진행이 전개되기는 하지만 역시 인물들의 성격 표현은 1막과 대동소이하다. 이러한 정적 이미지는 종래의 극단 '풍경'이 보여 준 에너지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연출의 이미지 변신일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 진행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인 만큼, 오히려 대사의 템포와 강약의 조절이 더욱 필요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극중 시공간의 현실에 무관심한 의상과 무대장치 역시 성격 표출에 지장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표정과 움직임의 변화를 통하여 내면의 갈등의 깊이를 드러내 준 김정호의 열연은 아름답고 눈부시다.

양승국 (연극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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