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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문인 떠받들기 '지자체가 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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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나도 문인으로 인생항로 바꿔봐?” 국회의원 보좌관 金모(28)씨는 최근 고향인 남원에 다녀온 뒤로 묘한 갈등을 겪고 있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의 2개 마을(노봉마을 ·매안마을) 전체가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故최명희씨 한 사람을 떠받드는 기념비처럼 단장되고 있는 것은 물론, 주민 상당수가 “최명희 고향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충심(衷心)에서 남을 인정하고 떠받드는데 신물 날 정도로 인색한 주변 풍토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게다가 향토출신 문학가 떠받들기는 남원뿐 아니었다. 경북 영양(이문열 ·오일도 ·조지훈) ·강원도 영월(김삿갓) ·원주(박경리) ·경남 통영(유치환) ·부산(김정한)등도 작가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 ·공원 건립에 나섰다.

金씨로선 이중 상당수가 해당 지자체에서 관광객을 끌어모으려는 심산에서 벌이는 사업이란 걸 눈치채지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관광객 흡수력을 노렸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 사이에 작가에 대한 흠모의 정이 유달리 후해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던가.

◇최명희 기념 마을=전북 남원시가 조선시대 양반집 여인들의 인생역정을 그린 대하소설 ‘혼불’의 무대이자 작가 최명희(崔明嬉·1947∼98)씨의 고향인 사매면 서도리를 지난해 11월 ‘혼불 문화마을’로 조성했다. 소설 속 청암부인의 생가가 있던 자리다.

문화마을 첫동네인 노봉마을 어귀에는 문학비와 ‘아소, 님하’‘꽃심을 지닌 땅’등 소설 속 글귀가 새겨진 한쌍의 장승이 서 있다.

또 동네안으로 들어서면 소설 속 청암부인이 살았던 네칸짜리 본채와 사랑채를 갖춘 종가집을 복원, 작품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둘째 동네인 매안마을까지 이르는 4㎞ 길은 ‘혼불의 거리’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2년 전만 해도 외지인들의 발길이 거의 없던 서도리에는 월 평균 3백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방학 중에는 대학생 ·문학동아리 회원 등이 단체로 찾고 있다.

남원시는 내년에 종가집 바로 앞에 부엌 ·공부방 등을 갖춘 초가집 형태의 ‘혼불 학습관’을 건립, 독자 ·문학도들이 찾아와 묵고 가게 할 계획이다. 공부방에는 ‘혼불’관련 자료를 비치하고 집 주변에는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각시복숭아 ·산수유나무를 심기로 했다.

◇거장들의 생가=소설가 이문열(李文烈 ·52)씨의 생가가 있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는 요즈음 7백여평짜리 전통한옥 건축공사가 한창이다.영양군이 9억원을 들여 내달 3월 개관할 여산문학연구소다. 여산은 이문열씨의 고향마을 뒷산 이름.

이 연구소에는 사랑채와 대청·서재 등을 마련,문학 애호가들이 며칠씩 머무르며 李씨와의 대화를 나누고 창작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영양군은 또 일월면 주곡리 조지훈(趙芝薰 ·1920∼1968)시인 생가에도 2007년까지 1백30억원을 들여 지훈문학관과 시비공원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영양군은 이문열 ·조지훈 ·오일도(吳一島 ·1901∼1946) 등을 낳은 ‘문향(文鄕) 영양’이란 소책자를 한 ·영 ·일어로 만들고, 이문열-오일도-조지훈 생가로 이어지는 문학순례코스도 개발했다. 지난해만 3만여명이 이 코스를 찾았을 정도.

또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67)의 생가터가 있는 경남 통영시 태평동에는 지난 2월 1천2백평 규모의 청마문학관이 개관돼 다양한 문학행사가 열리고 있다.

통영시는 지난 9개월동안 1만여명이 찾는 등 인기를 모으자 내년초 청마문학관 ∼ 통영우체국(청마가 편지를 자주 부친곳) ∼ 문화유치원(청마의 부인이 운영한 유치원)간을 ‘청마거리’로 지정할 계획도 세웠다.

송의호.이찬호.김상진.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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