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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전리품' 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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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대 미 대통령 중 앤드루 잭슨(7대)은 '엽관제(spoils system)의 시조' 로 불린다. 1829년 취임해 한차례 연임한 그는 선거유세 때부터 "당선되면 사기꾼과 만년공무원, 애덤스(현직 대통령) 지지자들을 쫓아내겠다" 고 호언했다.

영.미 전쟁과 인디언 토벌에서 이름을 날린 육군대장 출신인 그의 별명은 '결투꾼' . 평생 1백여차례나 결투를 벌인 승부사답게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전리품(spoil)' 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길 만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잭슨이 자기 당 사람으로 갈아치운 미국 내 관직은 10%에 불과했다. 그는 '모든 공직은 상식과 보통의 지성을 가진 모든 이들이 수행할 수 있다' 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최초의 '서부 촌놈' 출신 대통령답게 서민적.개혁적 발상에서 엽관제를 표방했던 것이다. 오히려 잭슨 이후 대통령들이 문제였다.

1889년 취임한 벤저민 해리슨(23대.공화당)은 불과 1년 사이에 전국의 우체국장 3만1천명을 갈아치울 정도로 '관직사냥' 을 즐겼다.

엽관제는 정당에 활력을 주고 충성심과 정치적 책임의식.선거공약 실천의지를 북돋우는 장점이 있지만 논공행상에 따른 줄서기.비효율.전문성 부족.파벌갈등 조장이라는 치명적인 폐해를 낳는다.

미국에선 19세기 후반 들어 공무원임용고시 시행 등 엽관제 견제가 본격화했다. 오늘날 신임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공직은 제한돼 있다.

조선시대에도 '분경(奔競)' 이라 불린 엽관 풍조가 골칫거리였다. 인사철마다 유력인사의 집을 찾아다니며 뇌물을 바치는 분경은 개국 초인 정종 때부터 법으로 금지했지만 사라질 줄 몰랐다.

개혁파 조광조(趙光祖)가 현량과(賢良科) 시행을 주장한 명분도 분경폐습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최근 한 민주당 인사가 인사개입 시비에 대해 "개입을 했다면 정권교체를 위해 고생한 사람들 몇자리 챙겨준 게 전부" 라고 항변했다.

그런가 하면 경찰인사에 대해서는 '양적 균형.질적 편중' '숫자만 맞춘 눈가리고 아웅' 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과거 정권도 그랬다' 는 반론 따위로 폐풍 답습마저 정당화하려 해선 곤란하다. 일부 요직은 다음 대선에 대비해 '눈 딱감고' 발령냈다는 분석도 나돈다.

그나저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4분의1에 불과한 이 좁은 땅에서까지 공직이 전리품 취급을 받아선 안된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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